고산병에 대한 경험 정리

고지대를 여행할 때 격게 될지도 모를 고산병에 대한 경험을 정리하였다. 처음 고지대를 가는 분들께는 약간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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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지대를 처음 여행하시는 분은 고산병이 최대의 공포일 것입니다. 저 또한 그래서, 남미를 가기 전인 2014 년에 미리 우즈베키스탄의 3500 미터급(?)의 고산지대에 가서 나름대로 고산병 테스트를 해봤을 정도입니다. 그런 걱정을 하시는 분을 위해 이 글을 씁니다. 이 글을 읽을 때는 제 개인적인 경험을 정리한 것이라는 걸 고려하세요.

우즈베키스탄 고산지대에서 말짱했기에 안심하고 2015 년에 남미를 갑니다. 처음 도착한 고산지대인 쿠스코에서는 거의 괜찮았는데, 잉카트레킹을 하는 동안 고산병으로 고생을 꽤 했습니다. 나중에 2017 년에 다시 남미를 갔는데, 이번에는 더 심하게 고산병을 겪었습니다. 고산병은 횟수를 반복할수록 더 심해진다더니, 제가 딱 그 꼴이었습니다. ㅜㅜ 그런데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말짱했는데, 왜 남미에서는 고산병이 그렇게 심하게 오는 걸까요?
고산병을 느끼는 유명관광지는 남미 뿐만 아니라 티벳 ~ 네팔, 아프리카 캘리만자로산, 북아메리카 로키산맥(그랜드캐년 등), 유럽의 융프라우, 하와이(마우나케아 천문대 등) 같은 곳이 있습니다. 자기가 갈 곳의 고산병 정보는 따로 자료를 찾아보시는 게 좋습니다. 고도가 얼마나 높은 지만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


0. 누가 고산병에 걸리나?

고산병은 기본적으로 산소가 부족해서 생기는 증상과, 이 증상을 없애기 위해 우리몸이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의학계의 공식적인 의견은, 알려진 특정한 규칙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고산지역에 올라가봐야 고산병 증상이 나타날지는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남미 원주민 말로는 근육이 많은 사람이 고산병이 올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근육이 산소를 많이 소모하기 때문이겠죠. 뚱뚱해서 근육질이 아닌 것 같은 사람도 지방 밑에 근육이 많은 경우가 있으니까 고산병을 겪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IQ가 높아도 고산병이 쉽게 올….(응? ;;;)

하지만 당일 몸 상태에 따라서 올 수도 안 올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에베레스트산을 등정한 적 있던 한국등반협회 회장님이 네팔 ABC캠프로 등반팀을 응원갔다가 고산병으로 돌아가신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가봤었는데 고산병이 안 왔더라도 고산병에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같이 다녔던 일행을 생각해볼 때, 고산병은 대략 절반 정도가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심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나중에는 자기가 아팠던 것도 기억하지 못하더군요. ^^;

1. 고산병이 나타나는 지역

제 경우에, 고산병은 대략 2800 m 정도의 고도에서 시작됩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이 높이는 높아지기도, 낮아지기도 합니다.) 이게 어느정도인지 잘 모르실 것 같아서 관광지 중심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남미 고산지대의 관문으로 생각할 수 있는 쿠스코(Cusco) 인근에서는 증상이 심하게 나타납니다. 쿠스코보다 고도가 더 높은 모라이(Moray)에서는 더 강하게 느낍니다. 개중에 고도가 낮은 살리네리스(Salineras), 마추픽추(Machu Picchu)로 가면 증상이 바로 없어집니다. (마추픽추에서도 예민한 분들은 고산병을 심하게 느낀다고 합니다. 응급용 산소를 비치해 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쿠스코~라파스(La paz)~우유니(Uyuni)까지 이어지는 관광지는 거의 전부 고산병을 일으킵니다. 우유니사막 2박3일 투어도 전부 고산병을 일으키는 지역을 다닙니다. 특히 칠레 아타카마와의 국경에 가까워질수록 고도가 높아져서 Reserva Nacional de Fauna Andina Eduardo Avaroa(국립공원)에서는 고산병을 겪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안 그런데,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이외에도 고산병을 일으킬 수 있는 곳은 많습니다. 제가 가보지는 않았지만, 페루의 중앙지역은 전부 고지대여서 관광을 생각한다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69호수, 파론(Paron) 호수, 곡타(Gocta) 폭포 등이 그런 지역이라고 하네요. 칠레 아타카마(San Pedro de Atacama)에서는 고산병이 없지만, 그곳에서 출발하는 투어 중에서도 매우 높은 고지대로 가는 Geiser del Tatio, Salar de Tara, Salar de Aguas Calientes 등의 투어가 있으므로 주의를 필요로 합니다.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사이를 가로지르는 산악지역에도 높은 지역이 많습니다. 이쪽은 외국인에게는 관광지로 유명하지 않아서 가실 분들이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주요 관광지 중에서 고산병이 없는 곳은 어디일까요? 페루의 나스카(Nasca)는 저지대이고, 이카(Huacachina Lagoon Reserved Zone) 등에서도 고산병을 거의 겪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페루로 오자마자 당일치기로 이곳을 많이 가죠.) 볼리비아 라파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는 아마존 정글의 루레나바께(Rurrenabaque)는 완전 저지대이고, 볼리비아의 중요 공항이 있는 산타크루즈(Santa Cruz de la Sierra)도 완전 저지대입니다. 라파스에서 비행기로 코차밤바(Cochabamba)를 거쳐 갈 수 있는 토로토로 국립공원(Toro Toro National Park)은 고도가 대략 2200 m 정도여서 고산병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는 토로토로 국립공원을 최적의 고산병 적응지로 꼽고 싶습니다. 토로토로 국립공원은 안전한데, 일부 트레킹코스는 대략 5600 m까지 올라가서 고산병을 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이곳에 갔을 때는 이미 고산지대에 충분히 적응한 상태였기 때문에 고산병 증상이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만, 처음 이곳에 가신 분이라면 속이 뒤집어지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고산병에 적응한 뒤에도 그보다 훨씬 높은 곳으로 가면 다시 고산병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데, 토로토로의 이 트레킹코스의 고도가 거의 그 수준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거기다가 토로토로 국립공원은 정말 끝내주는 곳입니다.) 또 볼리비아 라파스 근처의 차칼타야(Nevado Chacaltaya, 예전에는 빙하와 스키장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없어졌다고 합니다.)도 그랬습니다.

꿈의 관광지라고 불리우는 파타고니아는 체력이 많이 필요할 뿐(!),고산병이 오는 곳이 없습니다.

2. 고산병 증상

2.1 제가 겪었던 주요 증상은 두통입니다. 동시에 산소부족으로 체력저하가 나타납니다. 당연히 걷기 힘들어집니다. 그 이외에 그냥 얼굴이 붓는 정도…를 빼면, 겉보기에 나타나는 증상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런 증상 때문에 2 번째로 남미에 갔을 때 라파스(La paz)에서 병원에까지 다녀와야 했습니다. (병원에서 산소를 50 분쯤 마시니까 엄청나던 고통이 깨끗이 사라지고 바로 고산지대에 적응되더군요. ^^;)

2.2 고산병 증상 중에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증상이 있습니다. 잘 느껴지지 않는 이 증상 때문에 사진 찍을 때 성공확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집니다. 제가 찍은 사진을 고르면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이 증상은 고산병 증상을 느끼기 훨씬 전부터 나타나며, 저지대로 내려온 뒤에도 대략 3~4 일 동안 이어집니다. 바로 위에서 토로토로 국립공원의 고지대에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적었는데, 사실….. 사진은 거의 다 실패했습니다. ㅜㅜ (아… 아까운 귀요미 피카 사진…ㅜㅜ)

2.3 사람들이 느끼는 증상을 열거해보면 이렇습니다.
숨이 찹니다. 손, 발, 얼굴 등 몸이 붓습니다. 밥맛이 없습니다. 피곤하고 졸립습니다. 소변이 자주 마렵습니다. 구토를 일으키거나 설사를 합니다. 어지러움을 쉽게 느껴서 멀미를 합니다. 진짜 심각한 상태가 되면 기침을 하게 되며, 뇌수종과 폐수종이 일어납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병원에 빨리 가야 합니다.

저도 이 증상 중 일부는 겪었을 수도 있지만, 객관적이지 않아 따로 모아둡니다. 예를 들어 밥맛이 없었습니다만, 저기 음식들이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맛있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

3. 고산병 위험을 줄이는 방법

고산병은 일단 증상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저지대로 내려가는 것 빼고는 확실한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래 사항만 잘 지키면 그나마 증상이 조금 덜 오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1 숨을 깊게 들이쉬세요.
높은 고도로 올라가면 처음에는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꼭 산소가 없는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처럼요. 이런 느낌이 들기 전부터 폐가 산소를 최대한 많이 흡수할 수 있도록 숨을 깊게 들이쉬는 게 좋습니다.
제가 고산병에 쉽게 걸리는 이유도 숨쉬는 것과 연관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 몇십 초씩 숨을 멈추게 되는데, 그 뒤에 잠시 정신이 혼미해지거든요. 그 뒤부터는…

3.2 물을 많이 드세요.
계속 드세요. 화장실 자주 가게 돼서 귀찮겠지만 많이 드세요.
코카차가 도움이 된다는 분이 있었지만, 제게는 전혀 도움이 안 되더군요. 하지만 물을 마신 셈이 되어 고산병이 줄어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3.3 고산병이 오지 않게 하려면 얌전히 천천히 걸어다니세요.
움직이지 않으면 어지간한 고지대에서도 고산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비행기가 비행할 때 내부압력을 (공기가 해수면보다 절반으로 줄어드는 높이인) 6000 m 정도로 낮추는데, 비행기에서 고산병을 느끼는 사람이 거의 없잖아요.(사실은 저는 가끔 느껴요. ㅜㅜ) 그러니까 꼼짝하지 않으면 어지간하면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고산지대에서 뛰면 큰일납니다. 예를 들어, 도둑이 당신 휴대폰을 낚아채서 도망가도 쫓으시면 안 됩니다. 휴대폰을 되찾았다 해도…. 숨을 못 쉬어서 죽을 수 있습니다.(좀 과장된 표현… 그러나 병원 신세를 져야 할 수도 있고, 특히 남미에서는 총기 위협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절대 쫓아가지 마세요. 혹시 고산병에 적응해서 증상이 없어졌거나 처음부터 증상이 안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쫓아가지 마세요. (현지에서 몇 달 지냈던 분이 전화기를 택시에 놓고 내렸다가 쫓아간 뒤에 병원신세를 질 번 했다고 하더군요.)

3.4 몸을 따뜻하게 하세요.
몸이 차면 혈류가 느려지고, 결국 산소 공급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몸을 덥히려고 에너지를 소비하다보니 산소가 많이 필요하게 되고, 체력이 쉽게 떨어집니다. 따라서 옷을 잘 차려입고, 가능하다면 핫팩을 써도 좋을 것입니다. 찬물로 머리를 감거나 샤워를 하면 안 됩니다.

3.5 음주와 흡연을 하지 마세요.
말 그대로입니다. 술과 담배는 해롭다고 합니다.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3.6 피로에 주의하세요.
당연히 피곤하면 고산병이 올 확률이 높겠죠. 그러니까 갖고 다니는 짐의 양도 적게 하면 좋고, 하루 일과를 너무 길게 해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이 쿠스코에서 마추픽추 근처까지 밤새 걸어갔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 엄청 위험합니다.

4. 적응된 몸상태가 유지되는 시간

고지대에서 고산병에 적응한 상태에서 저지대로 내려오면 몸이 저지대에 다시 적응합니다. 그래서 저지대에서 오래 있다가 다시 고지대로 올라가면 고산병 증상이 다시 나타납니다. 저지대에 얼마나 오래 있어야 다시 고지대로 올라갔을 때 고산병 증상이 나타날까요?
7 일만에 갔을 땐 괜찮았고, 10 일만에 갔을 땐 고산병 증상이 (심하지는 않았지만) 다시 나타났습니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아무튼 답은 그 사이 어디쯤이라고 해야겠네요. ^^;;;;

5. 고산병약

가장 확실한 대책은 저지대로 내려가는 것이고, 차선책은 농축된 산소를 들이마시는 것입니다.(농축된 산소를 마시는 것은 가장 효과가 좋다고 기대할 수 있을 뿐, 확실한 방법은 아닙니다.) 보통은 알약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고산병약은 종류가 많습니다. 가장 유명한 약으로는 박근혜가 청와대 공금으로 구매했던 비아그라가 있습니다. 피를 빨리 돌게 하기 때문에 산소를 많이 공급하게 되어 고산병을 약화시킨다고 합니다. 남미에서는 소로치필을 많이 사용하며, 네팔에서는 다이아목스가 많이 쓰입니다. (이 두 약은 이름만 다른 것 같습니다.) 증상이 경미할 때는 혈액을 묽게 해주는 아스피린도 효과가 어느정도 있습니다.

남미에 갔을 때는 도착한 공항에 있는 약국에서 소로치필을 사면 됩니다. 공항에서 못 샀어도 그냥 일반 약국에 웬만하면 다 있습니다. 근데 사람마다 약이 안 듣는 경우도 있고, 부작용이 심한 경우도 있으므로 각자의 판단에 따라야 할 것입니다. 일단 먹어보고 문제가 있으면 다른 걸로 바꿔야 하겠죠. 저는 적응하는데에 (하루 두 알씩 먹어야 하는) 소로치필(Sorojchi pills) 6 알 정도가 필요했습니다. 5 일치 10 알 구매를 추천합니다.

국내에서도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 가면 고산병약을 살 수 있습니다. 다만, 효과를 전혀 못 봤다는 분들도 있으니까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6. 고산병을 대비해서 여행경로 짜기

고산병은 올지 안 올지도 모르고, 확실한 대비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처음 고산지역에 도착했을 때 여유시간을 2~3 일 잡아서 일정을 짜는 것이 좋습니다. 가면 좋지만 필수코스까지는 아닌 곳을 한두 곳 정도 끼워넣으면 됩니다.

예를 들어 반시계방향으로 여행할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처음 쿠스코를 가기 전에 우선 고도가 높아 고산병을 느끼기 쉽지만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69호수를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쿠스코에 도착한 뒤에는 인근에서 고도가 가장 낮은 마추픽추를 필수코스로 넣고, 쿠스코 인근 유적지와 티티카카(Titicaca) 호수 정도를 예비코스로 넣습니다. 무지개산(비니쿤카, Vinicunca – Rainbow Mountain) 같은 곳은 쿠스코보다 고도가 훨씬 높아서 필수코스로 넣기에는 적절치 않습니다. 따라서 처음 쿠스코에 갈 땐 고도가 낮은 마추픽추 쪽을 우선 방문(보통 2 일)하는 일정으로 짜고, 그 뒤에 상황을 보아서 무지개산 등을 방문하는 게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고산병을 느끼게 된다면 하루나 이틀 정도는 쿠스코 인근을 그냥 걸어다니면 좋습니다.

시계방향으로 여행을 할 때는 고산병을 처음 느끼게 되는 곳이 칠레 아타카마나 볼리비아 우유니사막입니다. 시계방향으로 여행하는 사람이 반시계방향으로 여행하는 사람보다 적은 이유 중 하나가 고산병을 더 쉽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타카마에서 우유니사막으로 갈 때 더 높은 고도를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때도 아타카마에서 높은 지대로 가는 투어를 다니며 고산병이 올런지 확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적응도 되고요.

마지막 고친 날 : 2023.02.19

PS.
이 글은 네이버의 남미사랑 카페에 썼던 것을 보충하며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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