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와 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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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생이었고, 살던 곳은 고등학생이 노력해서 무언가를 하더라도 귀기울여주는 곳이었다. 나는 교육제도 일부(과제와 시험의 문제 출제와 관련된 것이었다.)를 고치기를 원했고, 그것을 위해서 열심히 준비했다.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두툼한 서류를 만들었고, 결국 많은 사람의 표결까지 가게 됐다. (학생도 투표할 수 있었던 것을 봐서는 학교 교칙이나 관습을 바꾸는 것이었던 듯 싶다.) 하지만 부결되었다. 표결에 참여했던 내가 부결된 것을 알자마자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솟아났다. 투표를 위한 모임은 그렇게 해산됐고, 그 뒤로도 얼마동안은 선 채 그대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동료와 선생님이 와서 위로해 줬지만 내 눈물은 그치질 않았다.

-2010.08.13-

꿈에서 깬 나는 문뜩 “걷기와 뛰기”의 차이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됐다.
모두 이동한다는걷기는 공통점이 있지만, 걷기는 안전하게 움직여서 일부 몸이 같이 따라 움직이지 않더라도 넘어지지는 않고, 뛰기는 빨리 움직이기 위해서 불완전한 것을 동적으로 분석해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뛰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불완전한 상태를 계속 유지해 몸이 안 넘어지기 위해서 현재 상태를 분석해서 계속 동적인 대응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50 년간 뛰어왔다. 앞으로는 고속성장이 힘들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199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사회의 성장률은 낮아진 것 같지만, 곰곰히 살펴보면 계속 빠른 성장률을 유지한 것이다. 사람들 말로는 우리 사회는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다고 한다. 그런데 기존부터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 중에서 급성장해서 선진국이 된 나라가 있었나? 전후 복구해서 다시 선진국이 된 독일-이탈리아-일본을 빼면 그런 예는 찾아볼 수 없고, 이들 세 나라도 전쟁 전부터 선진국이었으므로 새로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없다. 그렇다는 건 우리 사회를 불완전하게 계속 유지시킨 요인이[누군가] 있다는 것이다. (누굴까?) 그 덕분에 우리 사회는 이젠 걷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 같다. 그렇다면 어느날 우리가 걷기로 결정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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