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 소말리아 내전 탈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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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에 CGV에서 갑자기 VIP 무료관람을 한다고 알람이 떴다. 그래서 예매할 수 있는 쿠폰을 받고, 기다리다가 겨우겨우 예매를 하고서 관람을 했다. 오래간만에 숨막히는 한 시간짜리 작전을 수행한 기분이다. ㅎㅎㅎ

이 영화는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를 각색하여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실제 있었던 일을 어느정도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서 그걸 적다보니 글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다. 실제 역사와 영화 사이를 오가기 때문이다. 이 점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러니까,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이라면 스포일러에 주의하는 게 좋을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엄청 혼란한 해적의 나라라고 여겨지는 나라, 소말리아. 우리나라에서는 외교부가 리비아와 함께 입국 금지한 유2한 아프리카 국가다. (전세계에서는 소말리아를 포함해서 6 개국과 필리핀 남부가 입국 금지돼 있다. 원래는 외교부 홈페이지의 지도에서 확인해야 하는데,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전부 빨갛게 칠해져 있고, 출입국금지국가만 까맣게 칠해져 있다.) 옛날에는 다른 아프리카 나라처럼 대충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는 그렇게 대충 들어가지 말라고 외교부가 권고하고 있다. 소말리아도 당시에 비슷한 수준의 나라였을 것이다. 아무튼 목숨이 걸렸다거나 그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여행한다고 아프리카의 이런저런 나라들에 대충 들어가는 일은 없도록 하자.)

이 영화는 배경이 1990 년대 초이다. 소말리아가 해적의 나라가 되기 얼마 전, 쿠테타가 벌어진 몇 일 동안에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원래 소말리아를 지배하던 바레 정권은 오랜 독재를 해오면서 썩어빠진 상태였다. 소말리아 사람들도 거의 포기하고 있던 그때 군벌들이 쿠테타를 일으킨다. 이렇게 되자 소말리아 국민들은 군벌을 지지하게 되고, 바레 정권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런데…….. 이렇게 들어선 쿠테타 정권은 바레 정권보다 훨씬 더했다. 바레 정권은 그나마 내 것은 지켰지만, 새로 들어선 쿠테타 정권은 나라 창고에 있는 곡식마저 외국에 퍼주면서 자기들 사리사욕을 채웠고, 그래서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는 상황에 처했다. 그러니 소말리아 국민들은 목숨을 걸어서라도 먹을 걸 구하려고 해적이 됐다는 것이다. 이런 걸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하는 것일까?


아무튼, 구테타가 일어나자 정보력과 경제력이 있던 미국 같은 나라는 재빨리 자국민과 외교관을 철수시켰는데, 당시 정보력도, 경제력도… 심지어 외교력도 변변치 못했던 남한과 북한의 외교관들은 본국과 연락은 커녕, 제대로 된 정보도 없이 무법천지가 된 현장에서 발만 동동 구르게 된다. 그나마 돈이 아주 조금 더 많던 남한 대사관이 상황이 조금 더 나았다고 하지만, 큰 차이가 났던 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소말리아를 빠져나갈 수 있을까?

남북 대사가 이렇게 맏장 뜬다고??

북한 대사관에 있던 사람들이 남한 대사관으로 와서 같이 공항까지 가서 탈출한다는 이야기만 빼면, 큰 줄거리는 사실인 것 같다. 이건 2000년대 중반에 내가 라디오에서 들었던 것과 거의 비슷한 내용이었다. (사실 영화를 보러 들어가서도 이게 그때 들었던 이야기와 같은 것이라는 걸 처음에는 몰랐었다.) 물론, 구테타가 일어나기 이전에 남한 대사와 북한 대사의 사이가 안 좋아서 서로 티걱태걱 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 것이다. 아무리 외교관들이었다 하더라도, 당시에는 자꾸 만나면 안기부와 보위부가 가만히 두지 않았을 테니…..

아무튼 그런 일이 있어서였는지, 남한과 북한은 독자적으로 UN에 가입하는 걸 포기하고, 남북이 동시에 UN에 가입했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에서는 UN가입을 위해서 남북이 외교적으로 각자가 UN가입을 지지하는 국가를 늘리려 노력한다고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당시 UN가입은 기존 회원국의 지지와 투표보다 상임이사국 5 개국의 지지가 더 중요했다. 그런데 상임이사국 중 소련과 중국은 공산진영, 미국과 영국과 프랑스는 자유진영이다보니 남한 가입은 소련과 중국이 반대하고, 북한 가입은 미국과 영국과 프랑스가 반대해서 서로 못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다가 소련의 붕괴와 현실적인 이유가 겹쳐지면서 상임이사국 5 개국이 동시에 가입하는 것으로 하자고 남북을 설득했고(?), 결국 1991 년 여름에 남북의 가입신청서를 단일안으로 처리하여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런데 남한 정권은 동시 가입을 끝까지 반대했다고 한다. 그래서 가입신청서도 북한이 먼저 냈다.)

뭐 아무튼 잘 된 일이다. (사진 출처)

영화는 전체적으로 잘 만들었다. 깔끔하게 제작되어 이해하기 힘들거나 눈살이 찌푸려지는 부분은 없다. 그런데 그 말은 반대로 영화가 인상적인 부분도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영화를 보는 내내 수첩을 손에 들고 있었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메모를 단 한 글자도 하지 않았다는 게 그걸 반영한다. ㅎㅎㅎ

전체 구성에 군더더기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눈에 띄는 군더더기라면… 남한의 안기부 요원과 북한의 보위부 요원이 각 성향을 시도때도 없이 티 내다가 급기야 난투극까지 벌인다는 내용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이건 이전의 다른 남북 관계를 다루던 영화들이 쓰던 방법을 밈처럼 갖다 쓴 것 같다.

이 영화의 단점이라면, 탈출의 주체는 남한 외교관들이었고, 북한 외교관들은 그냥 보호받으면서 따라가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라디오에서 들었던 내용대로라면,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이동할 때 차에 책을 붙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차에 대고 총을 쏴대거나 총격전이 벌어진다거나 했던 건 아니라고 했던 것 같다. ^^; 아무튼 영화는 기승전결을 맞추기 위해서 신나는 레이싱(?)과 총기난사(?) 장면을 보여준다. 이 부분 때문이었는지, 촬영한 화면의 느낌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링크 걸려고 찾아보니, 리뷰를 쓰다가 말아서 비공개로 해놨다. ;;; 영화는 재미있었는데, 내 머리 속에서 어떻게 써야 할지 정리가 안 됐던 것 같다.)와 매우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하나는 드라마, 다른 하나는 액션 영화로 특성은 많이 달랐지만, 구도, 화면 전환, 색감 처리 같은 게 비슷하게 느껴졌다. 촬영인력이 같지 않나 싶었다.

아무튼 이탈리아 대사관을 통해서 탄 비행기가 우간다 공항에 도착하여 다른 외국인들이 모두 떠난 뒤에, 남한과 북한 사람들이 내릴 때 남아있는 차량과 경비인력이 서 있는 장면이 여러 번에 걸쳐 나온다. 그런데 화면이 정확히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즉…. 겨우 그런 정도로는 남북의 경직된 관계는 전혀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비행기 하나 납치됐다가 관계가 급격히 좋아진 중국-한국 관계는 그럼 뭐냐…-_-)

그리고 당시 남북 대사들이 이후에 한번 만났었다고 하는데….. 물론 무슨 행사에서 먼 발치에서 얼굴만 확인하는 정도였다고는 하지만…. 보너스 트랙으로 그런 영상을 살짝 보여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


별점은…. 5 개 만점에 3.6 개 준다.

★ ★ ★ ☆

물론 이 점수는 영화 자체만의 점수는 아니고, 그 이외의 부분에서 점수가 약간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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