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이야기 – 광물과 생물의 공진화로 푸는 지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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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와이파리는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다. 재미있는 책을 참 많이도 만들어내는데, 최소한의 수준은 유지해준다. 이곳에서 나온 책 중에 특히 ‘오파비니아’ 시리즈는 특히 마음에 든다. 오파비니아 시리즈 중에 이 책은 11 번째 책이다. 정확히 언제 구매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어느날 보니 이 책을 갖고 있었다. ^^; 책을 펼쳐보니 네잎과 다섯잎 토끼풀잎이 잔뜩 꽂혀있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그때의 나는 책을 토끼풀잎 보관처로 사용하기로 했던 모양이다. ^^;;

[지구 이야기 – 광물과 생물의 공진화로 푸는 지구의 역사]

The Story of Earth: The First 4.5 Billion Years, from Stardust to Living Planet

로버트 M. 헤이즌 씀, 김미선 옮김
뿌리와 이파리
2014.06.10
2`2000 원





책의 이야기는 간단하다. 태양계가 생기는 순간부터 지구가 생기고, 달이 생기고, 바다가 생기고, 대륙이 생긴 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지구의 역사를 살펴본다. 그 이야기가 다 끝나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간단하게 기술한다.

들어가며
1. 탄생: 지구의 형성
2. 대충돌: 달의 형성
3. 검은 지구: 최초의 현무암 지각
4. 파란 지구: 대양의 형성
5. 잿빛 지구: 최초의 화강암 지각
6. 살아 있는 지구: 생명의 기원
7. 붉은 지구: 광합성과 산소급증사건
8. ‘지루한’ 10억 년: 광물 혁명
9. 하얀 지구: 눈덩이 지구와 온실 지구의 순환
10. 푸른 지구: 육상 생물권의 탄생
11. 미래: 변화하는 행성의 각본들
에필로그/ 감사의 글/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차례를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은 다른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다. 내용에 대해서는 내가 구지 따로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을 평하자면 이렇다.

글의 내용은 전적으로 화학자 입장에서 쓰여졌다. 그래서, 예를 들어 대충돌을 통해 달이 형성되는 이야기를 할 때 물리학적으로 할 이야기가 무척 많을 텐데, 막상 이야기는 좀 간단히 끝나버린다. 생물학적인 측면에서도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좋다. 이쪽 분야에서 화학자 시선의 정보가 워낙 적기 때문에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좀 많이 위험하다. 예를 들어 이런 문단이 있다.

남극 대륙은 순수한 고대 푸른얼음(단결정으로 이루어진 순수한 얼음. 얼음분자가 빛을 산란시켜 푸른 빛깔을 띤다-옮긴이)으로 이루어진 광활한 평원을 간직하고 있다. 그곳에는 결코 눈이 내리지 않으므로, 얼어붙은 표면은 수천 년 동안 변함없이 유지되었을 것이다. 우주에서 떨어진 암석들이 거기에 그냥 놓여있다. 생뚱맞지만 시커먼 물체가 회수되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27 쪽

이 몇 개의 문장에는 두 개의 오류가 포함돼 있다. 첫째는 옮긴이가 추가한 괄호의 내용이 문제인데, 빙하가 푸른 이유는 산란 때문이 아니라 얼음이 붉은 빛을 조금 더 많이 흡수하기 때문이다. (과학 쪽에서는 상식이며, 글쓴이도 나중에 본문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옮긴이와 편집자가 놓친 듯…) 둘째는 결코 눈이 내리지 않으므로, 얼어붙은 표면이 수천년 동안 변함없이 유지되었을 거라는 말이다. 지은이가 말하는 지역은 사실 눈이 거의 안 오는 것은 맞지만, 아예 안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운석이 모이는 것은 강한 바람이 쌓인 눈을 모두 날리고, 심지어 다른 지역에서 이동해온 빙하들도 모조리 깎아서 날려버리기 때문이다. 즉 단단한 운석 조각만 날아가지 않고 남기 때문에, 오랜 기간 떨어진 운석이 한 곳에 모이는 것이다. 이건 글쓴이의 실수로 보인다.

읽다보면 이렇게 오류를 보이는 부분이 꽤 많이 보인다. 아쉽다. 이 책을 읽는데 3 달 넘게 걸렸는데, 아주 조금씩 읽다보니 오래 걸리기도 했지만, 오류들이 자주 보여서 이에 대해 생각해야 할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제 위의 예를 봐서 알겠지만, 글쓰기는 수준이 그냥 그렇다. 원저자인 로버트 M. 헤이즌이 아주 훌륭한 글솜씨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거기다가 우리말로 옮긴 김미선 씨도 산뜻한 글쓰기 실력을 보여주지 못해서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예를 들어 위의 예에서 ‘고대 푸른얼음’ 같은 알듯 말듯한 표현을 쓰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이런 표현들 때문에, 분명히 나도 이 책에서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다가 깨달은 것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원시지구가 테이아와 대충돌이 일어나 지구와 달이 형성된 뒤에, 조석력이 작용하면서 달의 공전속도와 지구의 자전속도가 계속 변했다. 그런데 그 변화는 크게 한 번 변곡점을 가졌어야 한다. 그 변곡점은 언제일까?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는데, 가장 큰 변곡점은 액화됐던 지구가 온도가 낮아져 굳으면서 조석력이 크게 변했을 순간에 조석력이 크게 작아졌을 것이다. 달이 생긴 지 몇억 년쯤 지난 뒤에 일어났을 일이다. 물론 그 전에 달이 굳었을 때도 변곡점이 한 번 생겼겠지만, 그 영향은 달이 작은 만큼 그리 크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순간은 달의 역사에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7 장과 8 장은 다른 책에서는 보지 못한 신선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기대하며 재미있게 보려고 했는데, 역시 화학적인 설명이 주를 이루어서 나로서는 재미는 크게 없었다. 그래도 모르는 내용들이 잔뜩 쏟아져서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참고로 이쪽 분야가 글쓴이의 주전공 분야인 것 같다.)

9 장의 눈덩이 지구 이론은 어딘가에 내가 사놓은 책이 있을 텐데 못 찾아서 못 읽고 있다. 다음번에는 꼭 찾아서 읽어보도록 하겠다. (지금은 [조국의 시간] 읽어야 해서….ㅋㅋ)

그리고, 이 책은 중간중간에 수필이 끼어 있었다. 수필과 과학적인 설명부분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데, 이게 조금은 아쉬웠다.


이처럼…
이 책은 위험하면서도 재미있는 책이다.

지구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은 사람 입장에서는 전체적으로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구과학에 대해 처음 접하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책 안에 섞인 꽤 많은 오류 때문에 정말 위험할 수도 있다.

ps. 2022.08.09 추가
나중에 우연히 지구의 조석력이 공명을 일으켜 지구의 자전주기가 7 장부터 9 장까지를 포함하는 19억 년 동안 21 시간으로 고정됐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책처럼 지구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언급할 때는 어떻게든 소개했어야 하는 대사건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 책이 쓰여지는 동안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고, 또 광물 형성과는 큰 관련이 없어서 건너뛰었다고 생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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