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낙하문제와 베끼기 문제

이 글은 이전 블로그에 올렸던 글과, 그 글에 달렸던 댓글, 그리고 트위터에서 있었던 이야기에 대한 것이다. 2011 년 우연히 과학책 두 권을 접하게 됐다. 교양과학책이었는데, 저자가 다른 그 두 권에 거의 같은 글이 실려있었다. 최소한 둘 중 하나가 저작권 위반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에 대해 글을 썼다.


누가 누굴 베낀 것인가?

오늘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갔습니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란 책을 급하게 사야 했고, 좀 덜 급하지만 은희경의 <소년을 위로해줘>도 읽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과학책도 두 권이나 더 샀습니다. 하나는 교양과학서 <물리와 세상>입니다. 다른 하나는 전공서적인 <안경사를 위한 물리광학>이었습니다. 전공서라고 하더라도 내용 하나도 안 어려워요. 특별한 게 하나라도 나오지 않을까 하고 구매했지만, 고등학교 3학년 물리2와 물리학과 1학년의 일반물리 정도의 내용이더군요.

암튼 이런저런 책을 뒤져보다가 가판대에서 책을 한 권 들춰보게 되었습니다.

<맛있는 물리>(2010.10.25 펴냄)에서 어디선가 본 내용이 보이더군요.

얼마 전에 독후감 ‘우리 출판계의 아쉬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행복한 물리 여행』’을 썼던 바로 그 책 이야기입니다.

<행복한 물리여행>(2011.01.31 펴냄)은 사실 읽으면서 비문은 물론이고 오류가 한무더기였는데, 꼼꼼히 읽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 잘 기억하는 책이죠. 더군다나 인터넷서점에서는 이 고양이 이야기를 책 소개에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내용은 3층 높이에서 떨어진 고양이는 크게 다치지만, 10층에서 떨어진 고양이는 그보다는 덜 다친다는 내용입니다. 세부적인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떨어지기 시작하자마자 몸을 움추리기 때문에 종단속도가 더 빠르고, 어느정도 떨어지면 정신적으로 안정을 되찾은 고양이가 몸을 펴 종단속도를 줄여 안전해진다는 설명까지 같습니다. 그러나 이 내용 자체가 완전히 오류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친구한테 해줬더니 “풉~!” 이러더군요. 이건 생각해볼 필요도 없습니다. 구형인 1 cm짜리 빗방울(보통 소나기 크기 빗방울)의 종단속도를 계산해 보면 10 m/s 정도가 나옵니다. 사람이나 고양이나 이 정도의 속도로 떨어지면 무사하기 힘듭니다. 떨어지는 물체가 크면 클수록 종단속도는 더 커져서, 스카이점프 하는 사람이나 사냥을 위해 내리꽂는 매는 400 km/h 정도의 속도(110 m/s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종단속도에 가까운 속도가 되려면 매우 오랫동안 떨어져야 합니다.

10층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는 고양이나 사람의 속도는 종단속도랑은 별로 연관이 없다는 거죠. 한참 가속되고 있는 와중일 뿐입니다. 대충 계산해 보면 10 층(30 m 정도)에서 떨어지는 물체의 속력은 진공에서 20 m/s 정도…. 공기중에서도 15 m/s  이상으로, 사람이나 고양이나 매우 위험한 수준이네요. 그러니 종단속도 때문에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고양이가 덜 다친다는 것은 자체로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둘 중 한 명은 최소한 베꼈다는 거죠. 일단 늦게 나온 책인 <행복한 물리여행>은 이전에 저자가 동아일보에 실었던 기사를 엮은 것이니, 반대로 앞서 나온 <물리와 세상>은 베낀 것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출판문화를 살펴보면 <행복한 물리여행> 저자도 안 베꼈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두 책을 쓴 사람들은 모두 대학교 교수라는 점입니다. 최준곤 교수는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고, 이기진 교수는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입니다. 이 책들이 논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남의 글을 그대로 옮기는 점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전에 제가 오류 문제를 제기했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아마도 번역을 직접 하지 않고 제자가 했을 듯싶다고 말했었고, <블랙홀과 시간굴절>이나 <거품의 과학>은 문과 계통 사람들이 번역해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책이 됐다고 했었는데, 이 책과 비교하면 그나마 양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출판계에서는 인터넷에 공개된 글은 저작권이 없다고 마구 퍼다가 사용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2006년에 한참 편집자가 되겠다고 여기저기 면접보고 다닐 때, 면접보는 와중에 목격한 일이 있습니다. 법원이 인터넷에 공개된 글은 저작권이 없다고 판결했다더군요. 그래서 저자가 그냥 퍼다 쓴 글을 그대로 책으로 만들라고 출판사 사장이 편집자에게 지시하더군요.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대표적인 예가 <과학교사를 위한 빛과 파동>입니다. 이 책은 본질적으로 인터넷에 퍼져있는 정보를 모아서 책으로 엮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책 자체는 매우 훌륭한데, 각각의 내용과 사진을 보면 저작권 위반을 하고 있다는 거죠.

둘 중 하나가 베껴쓴 이번 문제도 같은 과정을 거쳤을 것입니다. 한 교수가 신문에 연재를 하면 다른 교수가 이를 그대로 옮겨 책을 내고, 원래 연재하던 교수가 책을 내게 되면서 같은 내용이 둘 이상의 책에 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내용이 맞는지 틀리는지도 살펴보지 않고 그대로 사용합니다.)

교보문고에서 나오면서 참 씁쓸했습니다.


2011 년에 이렇게 글을 썼었는데, 그로부터 3 년이 지난 2014 년에 이상한 댓글이 달렸다. 아마 이기진 교수나 최춘곤 교수 중 한 명이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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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댓글인데, 여기에 답글을 달았더니 이런 댓글이 두 개가 더 달렸다. 다 볼 필요는 없다. 이 댓글 자체도 참 어처구니가 없다. 더군다나 이 댓글대로 대학교 일반물리학 교제와 논문에 그런 내용이 포함돼 있다면 더 큰일이다. 하긴, 그러니까 과학이 산으로 가는 사태가 종종 일어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참고로 이 댓글을 쓴 사람이 가져오는 근거들은 주로 수의학 계통의 낙상한 고양이에 대한 통계다. 이 통계들도 참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이 가득 들어있다. (수의학 의사들은 물리를 거의 공부하지 않았을 테니 그러려니 하자.)

위에서 이야기한 두 책이 주로 인용한 수의학 통계는 4 층 안팎(2~9 층 사이)의 건물에서 떨어진(High-Rise Syndorme) 고양이가 어떤 부상을 당했는지에 대한 통계였다. 저 댓글에 달린 것과 같은 내용이다. 이런 통계는 그대로 믿으면 매우 위험하다. 만약 떨어져서 죽은(또는 확실히 죽을) 고양이라면 누가 병원에 데려가겠는가? 그래서 이미 죽은 고양이에 대한 통계는 없고, 도착한 다음  얼마 지나서 죽은 고양이(가장 빠른 게 4 시간 정도였던 것 같은데…)에 대한 이야기만 있다. 고양이의 생존능력과 연관된 통계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BBC의 기사도 링크를 남겼다. ( https://www.bbc.com/news/magazine-17492802 ) 이 기사를 보면 고양이의 종단속도는 100 km/h, 사람의 종단속도는 200 km/h 쯤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사실 사람과 고양이의 종단속도는 저 수치의 2 배 이상이다. 심지어 그게 BBC 다큐에서도 종종 나온다. ㅎ)


그 이후에, 트위터에서도 멍청한 일베충과 메갈충에게 집단공격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위 내용과 비슷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당시 뉴질랜드 여행중이었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 게 아쉽다. 한국이었으면 몽당 사법처리 하는 건데….-_-)


아무튼, 이 모든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걸 한방에 종료시킬 영상 하나면 끝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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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스키이다이빙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 이 모든 논란을 해결해 줬다. 고양이도 굉장히 빨리 떨어지다보니 사람이 낙하속도를 맞춰서 촬영할 수 있었다. 사람이 스카이다이빙 하며 떨어질 때 종단속도는 400~430 km/h 정도다. 물론 고양이는 사람보다 털도 길고, 가볍고, 작아서 사실상 종단속도가 사람보다는 느리기 때문에 저런 영상을 찍는 게 많이 어렵다. (위 고양이 영상은 아니었지만, 어떤 다큐의 메이킹필름에서 비슷한 상황의 촬영장면을 본 적이 있다. 참고로, 저 고양이 영상은 유투브에 올라왔던 동영상의 캡쳐라고 기억된다.) 이 내용은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것으로 판명났다. 스튜디오에서 녹화한 뒤에 배경을 합성한 핀란드의 어떤 보험회사 광고라고 한다. (풍동실험장처럼 바람을 만들고 촬영했을 것 같은데, 이때의 풍속이 궁금해진다.) 그러나 취소선 안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또 BBC에서 매가 나는 속도를 구하는 다큐도 있는데, 매와 작은 고기조각을 떨어뜨리고, 사람이 스카이다이빙을 하면서 고깃조각을 쫓는 매를 촬영하는 것이었다. 작은 고기조각도 사람과 같은 속도로 떨어졌다.


염려스러운 점은 영문 위키백과였다. 위의 정신나간 사람이 단 댓글에서 말한대로, 거기에는 떨어지는 고양이에 대한 틀린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In a study performed in 1987 it was reported that cats who fall from less than six stories, and are still alive, have greater injuries that cats who fall from higher than six stories. It has been proposed that this might happen because cats reach terminal velocity after righting themselves (see below) at about five stories, and after this point they relax, leading to less severe injuries in cats who have fallen from six or more stories.’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High-rise_syndrome)

ps. 2020.08.13 추가

국내 커뮤니티에서 21층 창틀에 갖힌 고양이에 대한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그런데 만약 위 책에 나온 말이 사실이라면, 저 글을 올린 사람은 괜한 걱정을 한 것이 된다. 고양이는 자연스럽게 땅으로 뛰어내릴 것이고, 그럼에도 안전하게 착지했어야 하니까. 결과는 안타깝게도 다음날 땅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고 한다. ㅜㅜ

또한 러시아에서 어떤 사람이 다리에서 고양이를 떨어뜨리고, 그 장면을 촬영해서 유투브에 올린 유명한 사건도 있었다. 그 러시아인도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고양이가 더 안전하다는 말을 믿고서 진짜 높은 곳에서 촬영했던 것이었다. (고양이는 당연히 죽었다.)

고양이가 떨어져도 안전하다고 헛되이 믿기보다는, 차라리 고양이 액체설을 믿자. (고양이 액체설은 2017 년에 이그노벨상을 받았다.) 무엇보다 어거지로 구겨넣지만 않는다면 위험하지 않고, 또 고양이가 귀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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