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복희씨』 – 박완서가 바라본 아홉 세대의 아홉 가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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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친절한 복희씨』를 읽으면서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이 몇 권이고, 그 중에 소설책은 몇 권이나 될까 생각해 봤다. 몇
권이나 읽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읽는 속도로 대략 따져보니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읽은 책은 1000권쯤 되지 않을까
싶다. 고1~고2 때 매년 100권씩 읽었던 걸 생각하면 대학교 이후 책을 정말 안 읽었구나 생각해 본다. 더군다나 내가 읽었던
문학소설은 고등학교 때 읽었던 것이 거의 전부이고, 그 이후 읽은 것은 박현욱 님의 『새는』 정도인데, 그 책 서평은 문학에
코드가 맞춰져 있지 않고 교육에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문학소설을 이해하는 감이 요즘은 거의 사라졌다는 슬픈 이야기….
그래도 오래간만에 읽은 문학책이니 나름대로 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친절한 복희씨 – ★★★
박완서 지음/문학과지성사
302쪽/9500원
2007
년 10월 12일 초판
신국판/반양장

소설은 한국전쟁 때부터 각
시대별로 아홉 여성이 자기 인생을 이야기하는 독립된 아홉 작품이다. 물론 1인칭 관찰자 시점인 경우도 있다. 박완서 님은 다른
환경에 처한 주인공이 모두 다른 삶을 살지만 인생의 목표와 과정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책을 쓴 기간이 길다는 것은 글 하나하나가 특정한 목표를 갖고 써진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는 동안 그렇게 느꼈다. 박완서 님은 작가의 말에서 웃을 일이 없어서 스스로를 웃기기 위해서 글들을 썼다고 한다.

전체에 묻어나는 체언 반복으로 형용사를 만드는 등 저자 특유의 문체, 들은지 너무 오래 돼서 잊었던 말들,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사고방식, 분명 방법은 있겠지만 뾰족한 해답을 내놓지 않는 결말같은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다. 거기다가 가끔 던지는
촌철살인…. 혹은 글쓴이 인생이 묻어있는 문장들… 원래 소설에서는 이런 것을 흔히 느낄 수 있겠지만, 내게는 더없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마지못해 자리를 떴다. 쌍쌍이 붙어 앉아 서로를 진하게
애무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늙은이 하나가 들어가든 나가든 아랑곳없으련만 나는 마치 그들이 그 옛날의 내 외설스러운 순결주의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뒤꼭지가 머쓱했다. 온 세상이 저 애들 놀아나라고 깔아놓은 멍석인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그래, 실컷
젊음을 낭비하려무나.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건
아니란다. 나는 젊은이들한테 삐치려는 마음을 겨우 이렇게 다독거렸다.

– 77~78쪽 <마흔아홉 살> 에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노동권-운동권 이야기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고, 마지막 이야기 <그래도 해피앤드>는 구리시 정도에
전원주택을 얻어 노년을 아름답게 보내고자 하는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마지막 이야기에선 현진건의 고전 <운수 좋은 날>과
반대로 외출하자마자 지지리도 꼬이던 심사가 친절한 택시기사를 만나면서 느껴지는 만족감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형식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는 소설 구성이지만, 젊은이라도 컨디션이 지독히도 나쁘고 운수 사나운 날 외출할 때 느껴지는 느런 느낌을 글로 잘 옮긴 것
같다.
박완서 님 나이도 그렇고, 주인공 나이도 상당하다보니 전반적으로 자식 이야기, 남편 이야기가 주가 되는데, 이런
부분은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책을 잘 아시는 분이 추천해 주셔서 읽게 됐다.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
나를 잘 아시는 분이라서 작품성과 재미를 갖고
있는 작품으로 추천해 주신 것이다. 일단 이 책 앞의 최소한 세 번째 단편까지는 재미없다고 느꼈다. 아마도
내가 50~60년대 시대사항을 잘 모르기 때문에 재미를 느끼긴 힘들었던 것 같다. 70년대 정도부터의 이야기는 나도 어느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점점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결국 이 소설 전체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절반만 재미있게 읽더라도 충분히 한 권 읽는 값은 하지 않을까 싶다.

나로서는 “조금
좋았다” 수준의 ★★★ 정도 점수를 줄 수 있지만, 많은 분들, 특히 여성은 좋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서 글을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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