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란 것은 무엇일까? 특히 ‘좋은 책’이나 ‘나쁜 책’은 무엇일까?
내가 많은 책을 처음 접한 것은 4학년 때 반에 학급문고가 생기면서였다. 1년동안 300여 권 중에 원하는만큼 읽을 수 있었는데, 내가 읽었던 것은 중학교 올라가기 전 매년 40권쯤 됐을 것이다.
그러나 진학한 중학교에는 학급문고도 없고, 책을 사볼 가정형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책을 거의 보지 못했다. 3년동안 교과서, 참고서를 제외하면 읽은 책이 손가락으로 꼽힐 정도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책을 접한 것은 고등학교 1~2학년 때였다. 2년동안 단행본 200권, 과학잡지 30권, 그 이외에 다양한 인쇄물을 접했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책 『생활속의 화학』도 고등학교 1학년(1989년) 말쯤에 읽은 책이다.
| 생활속의 화학 : 인류의 꿈을 찾아서 – ★★ W.릭스너/전파과학사 – 現代科學新書 117 263쪽/1300원 포켓용 1981년 9월 1판 / 1985년 9월 3판 |
현대과학신서는 영미문화권에서 좋은 과학책을 번역해 소개해주는 전집이었다. 미국에서도 대중을 위한 쉬운 서적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칼세이건이 『에덴의 용』을 썼었던 70년대 말 정도부터였다. 괜찮은 과학서적은 80년대 중반 이후에 주로 나왔다. 이 전집은 그 과도기에 등장한 책을 번역해 소개해준 해적판 도서였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와 집을 운행하는 버스 안에서 읽으며 다녔다. 비록 주말만 집에 갔지만, 버스가 한 시간이나 걸렸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재미있는 책은 학교 자율학습이나 점심시간처럼 짬이 날 때마다 책을 읽었다. 물론 방학 때도 책을 읽기에 좋은 시간이었다. 요즘 입시체제라면 독서량을 특기자로 해서 진학할 수도 있었을테지만, 당시에는 대학 진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학교공부에 큰 지장을 받아서 진학에 방해가 됐던 것 같다. 덕분에 모든 과학 과목은 쉽게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지만, 당시엔 그런 정도로는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
『생활속의 화학』은 제목 그대로가 내용인 책이다. 화학, 생명, 고분자, 염료/사진, 의약품, 농약에 대해서 일일히 다룬다. 원래 현대과학신서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써진 책들이어서 116번 『처음 3분간』같은 책은 세 달이나 걸리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은 내용 자체가 쉬워서 금방 읽었다. 책값도 1300원으로 싼 편이어서 (당시 소설책이 2000~3000원 정도였다.) 가난한 학생으로서 구매해 보기가 좋았다.[footnote]당시 책값은 과학책이 소설책 절반정도였다. 최근에는 과학책이 소설책보다 두 배 정도로 비싸니 격세지감이다. 물론 과학책 질이 많이 좋아졌고, 흔히 4도인쇄되는 것을 고려한다면 비싸진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현대과학신서는 92년 경에 증보판이 발매되면서 대략 5000원의 가격이 되었다. 좋은 고전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책값에 비해 물질적인 품질이 안 좋다는 걸 고려하면 너무 비싸졌다고 할까? – 아마 저작권과 관련하여 베른협약에 가입하기 전에 인세를 맞추기 위해서 가격을 올린 것같다.[/footnote]
내가 읽다가 원소가 106번까지 발견됐다고 메모해 놨다. 1980년 정도까지 알려진 원소는 103번까지였고, 고등학교 화학책에도 103번까지 나와있었다. 그러나 일반서적에서는 106번까지 발견됐다고 나와 있었다. 107번 원소는 발견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서 아직 증명되지 않았을 때였다. 120번까지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얼마전에 보도된 것을 보니 격세지감이다.
오늘날 논란이 되고 있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내용도 보인다. 책에서는 “그러나 오늘날 다행하게도 대기의 온도가 특별히 상승했다는 징조는 보이지 않고 해면의 상승도 관측되지 않았다.“라고 나온다. 80년대 중반까지는 지구온난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말에 온도가 상승하고 이상기류 발생“이라고 메모해 뒀는데, 사실 당시 온도 상승은 온난화와는 별로 연관이 없는 일시적 현상이었다.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듯이 지구온난화가 진짜라면 아마도 2000년대 이후의 기온상승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일까? 이 책은 내가 진학할 때 화학과를 1순위로 제쳐두는 중요한 이유가 됐다. 그 이유를 이야기하려면 경시대회 이야기를 조금 해야할듯 싶다.
당시 모교는 경기도 경시대회 화학분야에서 매년 한 명씩 입상자를 배출하고 있었다. 모교에 열성적이고 경험 많으신 화학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난 고3 3월에 화학을 입시과목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뭔가 체계가 집히지 않은 과목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이 책을 비롯하여 고1~2 때 읽었던 화학관련 책이 체계적이고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나보다. (그리고 대학교에서 살펴본 바 사실이었다.) 그래서 물리 경시대회에 나갔고 결과도 괜찮았다. 4월부터 선택과목을 지구과학에서 화학으로 바꿨고 성적도 잘 나왔지만, 끝까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당시에 내가 읽은 책을 되새겨보면 화학에 흥미를 잃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책 때문이었음이 분명하다. 다른 분야에 비해서 화학 분야 일반서적은 아직도 좋은 책이 별로 없는 것같아서 아쉽다.
물론 이는 사람마다 특성이 다른 것이 원인일테니 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지금 보면 오역·오타도 많고, 종이가 20년 세월의 무게에 누렇게 뜨고 있지만, 당시에는 이것만큼 좋은 책은 드물었다. 지금 책들과 비교한다면 ★★ 정도….
ps. 이 글은 그린비 출판사의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작성됐으며, 책장에서 가장 오래된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오래된 책 대부분이 시골집에 있기 때문에 이 책이 가장 오래된 책으로 꼽혔네요. ㅎㅎㅎ


이야~~ 정말 오래된 책이네요.
저는 20년 전에 읽었던 책 중에서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건 없는 듯해요.
집에 가면 30년 이상 된 책도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