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 영화를 이미 본 사람을 위한 감상평 #03

<부산행>에 대한 간단한 감상평, 그리고 연상호 감독이 우리에게 해주고 싶어할만한 이야기를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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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이미 본 사람을 위한 감상평 #03

창궐한 좀비 사이를 누비는 ‘부산행’ 기차

<부산행>에 대한 이 감상문은 두 부분으로 쓰여진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처음 쓰려고 했는데, 뭔가 찜찜해서 감상문을 못 썼다. 몇 달 뒤에, 프리퀄인 <서울역>이 개봉됐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봤다. 이전에 갖고 있던 찜찜함이 어느정도 해소됐다. 그러나 후기를 쓰기에 시간이 너무 흘러서 감상문은 안 쓰기로 했다.

그 뒤 4 년이 흘렀고, 연상호 감독이 후속작 <반도>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래서 <반도>를 개봉하면 보러 가야 하니까 다시 <부산행>을 봤다. 그런 김에 감상문을 남기기로 했다.

감상문은 <서울역>을 보기 전과 후의 것을 따로 써보기로 했다. 그런데 4 년 전 느낌과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지는 못할 것 같다. 이 점 이해를 부탁한다. 그리고, 감상문이 두 개이다보니 분량이 너무 많아서 중복을 최대한 줄였다.

(주의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다면 읽지 마세요.)

포스터

리뷰 1부 : 부산으로 가는 마지막 기차

뭔가 이상한 날이었다. 신문에는 한반도의 한 가운데에서 뭔가의 유출사고가 일어나고, 하천의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뉴스가 한가득이다. 한편 작은 트럭이 지방도를 가다가 재수 없게 고라니를 로드킬했지만 그냥 가버린다. 그러나 죽은 줄 알았던 고라니는 불사조처럼 불쑥 일어서는 것이 아닌가? (ps. 트럭을 몰고 가는 김 씨는 영화가 제작되기 8 년쯤 전에 충북에서 어떤 농장을 하시던 농부 같다. 이 영화에서 무언가 사건이 벌어진 배경지인 오송 산업단지 부근에서 농장을 운영하시던 농부는 구제역 때문에 멀쩡하던 가축을 몽땅 생매장한 뒤에, 새끼를 사다가 농장을 다시 시작하였으나 여덟 달만에 다시 구제역이 와서 다시 몽땅 생매장해야 했다. 그리고는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 뒤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을 때쯤, 전국 여기저기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폭도가 시위를 한다고 발표하는 정부의 발표만 언론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어느날 동녘이 밝아오고 있었다. 서울역에서는 부산행 기차가 한참 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합실에서 어떤 소란이 있었지만, 기차의 어느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아니 알 수가 없었다. 소란을 지켜봤던 앳된 소녀가 출발신호를 하던 서울역 직원의 등뒤에서 기차 안으로 뛰어들었을 뿐이다. 출발신호를 보낸 서울역 직원에게 어떤 사람이 달려들어 넘어뜨리는 다소 생소한 모습이 잠깐 보였지만, 이내 멀어졌기에 주의깊게 본 승객은 없었다. 어제도, 그제도 반복되던 평소의 여행길이었다. 그러나 이 기차는 출발한 뒤, 마지막 부산행 기차라고 확정됐다. 누구도 그렇게 될 줄 몰랐다. 이렇게 해서 기차는 부산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차!

무언가 일이 잘못된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게 어떤 것인지는 몰랐다. 이상하게 변한 사람들이 순식간에 늘어나 한 칸 한 칸씩 삽시간에 피로 물들었다. 출발한 기차에서 벌어지는 상당히 이상한 일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이 열차에 타면 안 될 사람, 무임승차한 노숙자 딱 한 명밖에 없었다! 이상하게 변한 사람들로부터 객차를 겨우 차단한 뒤에야, 사람들은 따로따로 지금 벌어지는 사태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한다. 스마트폰으로, TV로, 또는 직접 보면서…..

그 뒤에 일어날 일은 사실 뻔했다. 차례차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결국 극소수의 사람들만 안전한 부산에 도착할 것이다. 좀비영화라면 줄거리는 이걸로 충분하다.


<부산행>은 보기 전에 선입견이 먼저 생겼다. 포스터를 보는 순간 영화배우 공유가 떡 하니…..! 공유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독재자 박정희를 꼽았으며, 그 뒤 지금까지 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당연히 정말 마음에 들지는 않은 배우다. 그러나 배우로서 연기를 매우 잘하고, 또 영화가 워낙 잘 만들어졌다는 말을 들었던지라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예매를 했다. 실제로 영화는 매우 마음에 들었다. 솔솔한 NG도 있었고, 누구는 눈에 거슬릴 정도로 연기력이 안 좋았지만 영화 평가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심하게 마음에 안 드는 장면도 있었다. 예를 들어 도망가려고 할 때 노숙자가 깡통을 밟는 장면은 지금이라도 그냥 편집해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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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이 문과이기 때문일 듯!

유리창이나 유리문이 좀비들에게 밀려서 깨질 때 여러 곳이 ‘동시’에 깨지는데, (물론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 수도 있지만) 확률상 한 번쯤이면 몰라도…. 여러 번 반복해서 일어날 일은 아니다.

또, 여러 등장인물이 동시에 따로 일을 해야 할 때 한 명이 카메라 앞에서 일하는 동안 다른 등장인물은 카메라 밖에서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다거나 하는 경우가 아주 조금 있었다. 이런 식의 문제들 때문에 시나리오와 편집에 만점을 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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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는 도망가지도, 타지도 못하는 위치인 유리창에서 왜 들여다보고 있는 걸까?

좀비로 변하는 등장인물을 잠시 살펴보자.

  • 가출소녀(심은경) : 21 분
    서울역에서 출발 직전에 갑자기 KTX에 타면서 이 열차를 혼돈의 카오스로 몰아간다.
  • KTX 여승무원 정민지(우도임) :22 분
    격련을 일으키던 가출소녀를 도우려다 물려서 감염자1호가 된다. 그 뒤 맹활약 하여 많은 사람을 좀비로 만든다.
  • KTX 승무원 팀장 한성수(한성수) :24 분
    여승무원 정민지와 무전을 주고받다가 좀비 발생을 재빨리 인지한 인물이다. 객차의 승객들을 대피시키다가 정민지에게 물려 좀비가 된다. 그 뒤에 정민지 좀비와 함께 맹활약을 한다.
  • 대전역 육군 이등병 (박종관) : 44 분
    유명한 배우가 연기했지만, 잠깐 나오는 엑스트라다. 대전역의 모든 군인들이 좀비가 될 때 도망쳐나온 유일한 군인이었는데, 노숙자가 소리지르는 바람에 군인 좀비가 몰려와서 물어뜯긴다.
  • 조폭 윤상화(마동석) : 74 분
    원래는 조폭(?)이었으나 아내 성경을 만나 개과천선한 인물인 것 같다. 좀비가 판을 치기 시작하자 계속해서 좀비와 싸운다. 대전역에서 승객들이 흩어지자 좀비를 뚫고 다니면서 승객들을 다시 한 곳으로 모은다. 그리고 거기에서 문을 막다가 좀비에게 손을 물려 좀비가 된다.
  • 할머니 인길(예수정)과 종길(박명신) : 각각 75 분과 80 분
    자매다. 인길은 남들과 나누기를 좋아하여 퍼주다 보니 평생 어렵게 살아 몸이 약했다. 그래서 좀비가 된 뒤에도 힘이 없다. 종길은 그런 인길에게 그만 좀 나눠주라고 잔소리하는 동생이다. 인길은 좀비가 아닌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고서 그냥 좀비가 되고, 종길은 그런 인길을 보고는 심적 충격을 받았는지 닫혀있던 객차문을 열어서 자기와 함께 남아있던 모든 액스트라를 좀비로 만든다. (사실은 내릴 곳을 지나쳤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서 내리려고 열었는지도..^^;)
  • KTX 승무원 석(?)기철(장혁진) : 91 분
    KTX 승무원으로, 정직원이다. 원래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인물이었으나, 계속되는 좀비의 압박 속에 천리마고속 상무 용석을 점점 닮아간다. 그러다가 용석이 자기가 좀비에게서 탈출하기 위해 기철을 좀비에게 밀어버리면서 좀비가 된다.
  • 고등학생 김진희(원더걸스 안소희) : 94 분
    고등학교 야구부 응원단장으로, 민영국과 연인(?)….이라기엔, 그냥 민영국을 자기 거로 여기고 있는 학생이다. 큰 특징이 없어보인다. 대구에서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옮겨가다가 용석이 좀비에게 던져서 물린다.
  • 고등학생 민영국(최우식) : 94 분
    고등학교 야구선수로, 같은 팀원과 함께 부산으로 가는 중이다. 전반적으로 숙기가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나온다. 좀비가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달려드는 좀비를 방망이로 때리면서 막아서는 것으로 보아, 등장인물 중에 상황을 가장 빨리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대구에서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가다가 김진희가 좀비에게 물리자 울면서 끌어안고 있다가 같이 좀비가 된다.
  • KTX 기장(김동현) : 95 분
    책임감 넘치는 KTX 기장이다. 대구에서 기차를 갈아탈 때 용석이 기차를 쫓아가다가 넘어지자, 용석을 구하러 갔다가 용석의 계략(?)에 좀비가 된다. 좀비물에서 극을 진행시키는 중요한 클리셰를 따르는 흔한 인물.
  • 노숙자(최귀화) : 97 분
    KTX에 무임승차한 노숙자로서, 기차를 타기 전부터 좀비에 대해 알고 있던 인물이다. 더럽고 냄새나는 중년의 남자로 나오지만, 인간미가 있고, 정이 있으며, 남을 위해 헌신한다. 대전역에서 도망치고 있던 군인을 향해 소리지르며 달려가서, 좀비들이 이 군인을 향해 달려들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지만…. 대구역에서 다른 사람이 좀비떼에게 위기에 처하자 막아주면서 좀비가 된다. (완전히 변하기 전에 열차에 깔려서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 천리마고속 상무 용석(김의성) : 102 분
    천리마고속 상무로 머리 회전과 운동능력이 엄청난 사람이다. 그 능력을 자기 안위만을 위해 사용해서 다른 사람들을 위기로 몰아넣는다는 게 문제인 인물이다. (얼마나 나쁜 사람으로 그려졌는지, 배우 김의성 씨가 처음 원고도 안 보고 하겠다고 했다가 원고를 읽어본 뒤에 거절할까 고민했다고 한다. 연기력이 좋은 김의성 씨가 역을 소화하지 않았다면 제대로 인물이 소화되지 못했을 것 같다.) 한 단어로 말해 사이코패스! 기장을 좀비에게 넘길 때 뭔가 잘못됐는지 다리에 작은 상처가 생겼고, 그 결과 서서히 좀비가 된다.
  • 증권사 펀드매니저 서석우(공유) : 107 분
    증권사의 유능한 펀드매니저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좀비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알파Α요 오메가Ω인 인물이다. 처음에는 자기와 딸의 생존을 위한 강한 이기심을 보이지만 점차 주변사람도 챙기는 등 행동이 변한다. 끝까지 잘 살아남았지만, 기관실에 먼저 타고 있던 용석과 싸우다가 물려서 좀비가 된다. 그리고는 남은 두 사람을 좀비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뛰어내린다.
  • 만삭 임산부 성경(정유미) : 생존
    윤상화의 아내, 만삭의 임산부여서 영화 내내 특별한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직업 등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몇몇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임기응변이 뛰어난 편인 듯. 그러나 좀비가 몰려오면 순간 멍해진다.
  • 초등학생 서수안(김수안) : 생존
    서석우의 딸이다. 초등학생답게(?) 교과서대로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남들을 위기로 몰아넣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무튼 영화 내내 주변에 지켜주는 사람이 있어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 막판에 터널을 통과하면서는 아빠 석우에게 불러주려고 연습하던 노래를 부르고, 덕분에 군인의 총에 맞지 않고 구조된다.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해결사로 등장한 사람은 마동석과 최우식이 있다. 반대로 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을 위기로 몰아넣을 (보통 빌런으로 불리는) 사람은 김의성이 있고,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FM대로만 행동하여 관객을 고구마 먹다가 목구멍이 막혀 질식사할 것 같은 위기에 몰아넣는 사람으로 서수안(서석우 딸)이 있다. 그리고 서석우는 빌런에 가까운 이기적인 인물에서 점차 남을 구하는 해결사로 변해가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석기철 KTX 차장은 (서석우와 반대로) 처음에는 남을 배려해주다가 나중에는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인물이다. 그 이외의 등장인물은 나름의 역할이 있지만,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등장인물은 잘 구성해놓은 것 같다. 각 등장인물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특징과 역할을 잘 보여주면서 동시에 전반적인 좀비영화의 클리셰를 잘 따라했다. 전체적으로 인물묘사가 뛰어났다. 물론 좀비를 맞닥뜨렸을 때 멍하게 바라만보고 있는 장면이 좀 자주 나왔는데, 너무 자주라서 아쉬움이 남았다. 특히 이미 좀비를 인지한 인물이 이러거나, 한 인물이 두 번 이러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건 시나리오상의 실수들로 보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성경과 수안이 터널을 통과하는 장면은 아쉬움이 더 많이 남는다. 보통 군인이라면 산지 지형에서는 산의 8부능선 정도에 진지를 구축하여 멀리까지 관측하려고 할 텐데, (상대가 좀비이기 때문에 8부능선보다 꼭대기에 진지를 구축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왜 터널 맞은편에 진지를 구축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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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쉬웠던 장면

제일 꺼림찍했던 점은 마지막에 살아남는 게 여자와 어린아이 단 둘 뿐이라는 것이다. 이건…. 헐리웃 영화에서 공식이라고 불릴만큼 자주 쓰이는, 늘 보아오던 결말이다. 그러니까 헐리웃 영화는 시작할 때는 다양한 사람이 출연하지만, 엔딩에서는 보통 여자와 아이들만 살아남는다. 더군다나 살아남은 사람들, 특히 여자는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유능한 사람들이 이런저런 일을 할 때 방해하며, 그렇게 돼서 일행 전체가 위기에 처한다. 물론 유능한 사람들이 이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결국 이들을 구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자기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늘 보아오던 전개지만, 참 이상도 하지 않은가? 그런데 <부산행>에서도 같은 패턴을 보인다. 성경은 임산부라서 거의 아무것도 못하고, 서수안은 꼬마라서 거의 아무것도 못한다. 그리고 결말은….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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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에 쓸데없이 신파를 끼워넣었다는 비난을 보았지만, 난 자연스러운 이야기 전개라서 그리 나쁘게 보지 않았다. (신파가 나쁜 건 애초에 그렇게밖에 전개가 예상되지 않을 때이다.) 물론, 영화의 본결말보다는 성경과 서석우만 살아남는 결말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했으면 결말이 깔끔하고, 신파 운운하는 이야기도 듣지 않았을 텐데…..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좀비물을 만들기로 했으니까 좀비를 잔뜩 때려넣어서 만들자…. 하는 식으로 만든 게 아닐까 싶었다. 아무튼 좀비의 엄청난 액션이 좋았고, 심지어 좀비로 변한 여자들은 여전이 이뻤다. ( ^.^)(^.^ ) ( ^.^)(^.^ ) 좀비 영화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제 할 일을 한 것이니까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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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는 이뻤다!

그래서….. 나는 5 점 만점에 4.0 점을 주겠다.

★★★★


리뷰 2 부 : 부산으로 진격!

<부산행>이 개봉한 몇 달 뒤에 <서울역>이라는 프리퀄 애니메이션이 개봉됐다. 연상호 감독이 <서울역>을 만들고 있는 와중에 투자배급사가 이걸 영화로 만들자고 제안하자 만들던 작업을 중단하고 다시 만들기보다는 새 이야기를 만드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만에 <부산행>에 대한 아이디어를 즉흥적으로 만들어 투자자들에게 제출하면서 영화가 만들어지게 됐다.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 <사이비>라는 걸출한 애니를 본 적이 있었으므로, 당장 <서울역>을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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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은 정치색이 매우 진했다. (전두환 개새* 닮은 사람도 나온다.) 교과서에 써 있는 것을 읇던 대학생이 현실에서는 어떻게 다르게 행동하는지도 보여준다. 전경들이 시위대를 진압[탄압?]하던 모습도 꽤 잘 보여준다. 상징 같은 걸 안 쓰기 때문에 이해하기 쉬웠다. 그런 와중에 어떤 노숙자 한 명이 좀비로 변했고, 이 좀비는 다른 사람들을 물어뜯으며 여기저기에 좀비를 양산한다. 결국 주인공이던 창녀, 창녀의 남자친구(?), 창녀의 포주 모두 좀비로 변하면서 끝이 난다. 전에 봤던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들이 워낙 좋은 작품이었기 때문에 <서울역>도 기대했지만, 기대만큼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부산행>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서울역>은 소문과는 다르게 <부산행>의 프리퀄은 아니다. <서울역>은 이유불명으로 노숙자에게서 좀비가 발생하고, <부산행>은 바이오산업단지에서 뭔가를 유출하여 좀비가 발생한다. 둘 모두에서 좀비가 발생하기 이전에 좀비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이 두 영상물이 직접 연결될 가능성은 없다. 세계관이 느슨하게 연결되기는 한다.

뭐 아무튼….. <서울역>을 보다보니 좀비의 정체가 무엇인지 쉽게 이해됐다. 좌파, 진보주의자를 상징하고 있었다. 일베충들이 ‘좌좀’(좌파좀비를 줄인 말로 생각된다.)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걸 듣고서, 연상호 감독이 그걸 구현해서 <서울역>을 제작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좌파’와 ‘우파’라는 말은 (처음에는 중요한 구분으로 쓰였을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정치적 노림 이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대신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라는 말로 뜻을 살펴야 한다. 진보주의는 무언가를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걸 선호하는 경향을 말한다. 반대말로 여겨지는 보수주의는 지금 갖고 있는 것을 되도록 지키려는 경향을 말한다. 그러나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는 반대말이 아니다. 사회 전체를 위한 행동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가 아닌 자기 또는 자기를 포함한 극소수의 사람을 위해 행동하는 경향은 진보주의나 보수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다.

이기주의는 익히 보아왔던 매국세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의 집회를 가면 일장기와 성조기를 쉽게 볼 수 있다. 남의 나라 깃발은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해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은 이승만-박정희 독재자 시절부터 우리나라의 이기주의자를 보살펴왔다. 미국이 실질적으로 자유주의세계의 방파제 역할을 해왔다고 우리가 인식하고 있지만(진짜 그랬던 적이 있었다.), 실제로는 자유주의세계가 아니라 자기들의 이익을 보호했을 뿐이며, 그래서 민주주의국가가 아닌 독재국가도 보호해줬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독재국가였던 긴 시간동안 독재정권을 보호해주고(정치학자들의 평가를 보면, 1970 년대에는 김일성과 박정희의 독재 정도가 비슷했다. 자국민은 박정희가 7000 명대로 더 많이 죽였다고 한다.), 당근(원조)도 많이 줬다. 독재자는 근본이 없기 때문에 힘 있는 (미국이나 소련 같은) 자들의 더 말을 잘 듣기 때문이다. 그렇게 얻었던 독재국가 시절의 보호와 당근의 향수를 기억하던 사람들은 미국을 계속 좋게 볼 확률이 높다.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일제침략기 때 매국노들에게 엄청난 부와 권력을 주었었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영향력 있는 모든 분야의 인물들에게 굉장히 많은 뇌물을 먹이고 있다. 매년 몇조 원의 현금을 살포한다. 그동안 일본이 뭔가를 할 때, 우리나라가 표면적으로는 반대하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에게 유리한 쪽으로 결정해온 것을 떠올려보라. 예를 들어, 일본과 우리나라의 수산업 협정을 갱신할 때, 우리나라에서 준비해 갖고 갔던 정보는 거의 없다고 알려졌었다. 또 불과 얼마 전에 후쿠시마 농수산물 수입 금지에 대해 국제재판소에 일본이 고소했을 때를 기억해보기 바란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그 재판을 거의 무시하며 자료조차 제대로 내지 않았다. 이런식이니까 일본에 매우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수산업협정은 박정희 시절에 맺었던 협정보다 더 참혹한 결과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박정희 때는 일본이 뭔가를 많이 주면 박정희 정권도 그만큼 많이 돌려줬기 때문에 일본 입장에서 많이 빼앗아올 필요가 없었다.) 후쿠시마 농수산물 수입 금지 고소 건은 박근혜 때 열린 1심에서는 우리나라가 졌다. 우리나라 관료들이 무능해서 늘 그렇게 된 것일까? 그러면 왜 정권이 바뀐 뒤에는 그런 모습이 안 보이는 것일까? 문재인 정부들어 열린 2심에서는 이겼다. 국제재판소의 재판의 1심 판결이 2심에서 뒤집힌 건 단 한 건도 없었던 일이라고 한다. 이것만 보아도 그동안 일본에게서 돈을 받아왔던 우리나라의 지도층이라는 X들이 어떻게 일본의 이익을 위해 활동해 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보수주의와 이기주의를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


<서울역>에서처럼 <부산행>에서도 좀비는 진보주의자를 뜻한다. 기차에 타고있는 주요 등장인물이 좀비로 변하는 순서를 살펴보면, 그 순서에서 어떤 특징이 나타난다.

끝까지 좀비가 되지 않는 것은 임산부와 초등학생인데, 이는 각각 출산교육은 절대로 진보적인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된다는 걸 보여준다. 예를 들어 입덧약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 사건은 왜 그런지 분명히 보여준다. (최근에는 안아키를 비롯한 백신 거부자와 채식주의자가 이걸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식한 사람들이 고집을 피우면 답이 없다. 그나저나 왜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 이름이 안아키일까?)

마지막에 좀비가 되는 건 금융을 상징하는 증권 펀드매니저이다. 금융이 진보적일(이기적일) 때마다 세계대공항이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같은 경제대공항 사태가 벌어졌다. 현재 아르헨티나는 고의적으로 물가상승률을 매우 높게 유지하는데, 이럴 경우엔 IMF를 맞을 수밖에 없다. (아르헨티나는 실제로 2019 년에 IMF를 맞았다. 그 이후에도 경제기조를 계속 유지하려고 했지만,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못해서 이후의 효과는 없다고 한다. 일본도 비슷한 정책을 취하고 있는데, 경제 외적으로도 따질 게 많아서 아르헨티나와는 상황이 다르다. 그렇더라도 IMF를 곧 맞을 것 같지만!)

그 이전에 좀비가 되는 것은 천리마고속 상무인데, 기업의 경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업은 보통 보수적으로 경영해야 한다. 물론 진보적으로 경영하는 회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구글과 테슬라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렇게 진보적으로 경영해서 대기업까지 성장하는 경우가 이들 말고 또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경영은 금융과 다른 점이 분명 있다. 늘 보수적이기만 하면 어느순간 훅 망해버린다. 따라서 적확한 순간마다 한 번씩은 진보적 운행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경영은 금융보다 덜 보수적인 분야라고 봐야 한다.

여기까지는 각각의 사회 분야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잘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부터 좀비가 되는 사람은 우리사회의 각 계층을 뜻한다.

그 이전에 좀비로 변한 사람은 노숙자와 KTX 기장이다. 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노숙자는 저소득층, 기장은 그냥 기장(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이쪽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자기에게 이득이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서 보편적으로 상당히 보수적이다.^^;;;; 다음이 연인인데, 이것은 본능이 많이 관여하기 때문에 너무 진보적인 자세를 취하면 안 된다.

그보다 앞서 좀비가 된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남이 건드리지 않아도 곧잘 진보적으로 변하는 사람, 즉 자발적인 좀비다. 제일 처음 좀비가 되는 것은 취약계층이다. 가출소녀, KTX 비정규직 승무원, 이등병…. 특히 KTX 승무원 하면 KTX 여승무원 비정규직 사태가 떠오르지 않은가? 그 다음 좀비가 되는 것은 조폭과 할머니, 약간 높은 승무원이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보수적인 사람에서 진보적인 사람까지 자연스럽게 나열되었다.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아마도 연상호 감독이 각본을 준비하면서 고의적으로 이렇게 순서를 맞췄을 것이다.


보수주의의 다른 방향인 이기주의로도 따져보자. 왜냐하면 보수주의라는 말이 우리사회에서는 실질적으로 이 뜻으로 더 많이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따지려면 지역이 화두가 될 수 있다. 서울쪽은 진보, 대구와 부산쪽은 보수다. (실제로는 대구쪽과 부산쪽의 보수는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 이번의 보수는 앞에서 말했듯이 이기주의다. 물론 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이 이기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세뇌 받아서 이기적인 정치인들을 유달리 강하게 지지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이 뭔가 이득을 취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냥 생각이 모자라다고 할 수밖에…… 아무튼, 이쪽으로 생각한다면, 독재자 박정희를 가장 존경한다는 공유가 주인공을 하는 것이 정말 적절해 보인다.

왜 배경이 서울이며, 부산이며, 대구인가? 이 영화는 개봉 당시에 우리나라의 진보와 보수 상황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진보적인 생각으로 애니메이션을 가득 채우던 연상호 감독은 자기 희망을 이 영화에 담았을 것이다. 즉 진보주의자들이 보수주의의 중심인 대구와 부산으로 몰려가는…. 연상호 감독의 꿈!

그리고…… 거짓말처럼 실제로 그 꿈이 현실이 됐다. 이 영화가 개봉된 것이 2016 년 7 월 20 일부터 8 월까지. 촛불집회가 시작된 것이 10 월 말부터. 박근혜가 대통령 탄핵소추를 청구받았던 것이 12 월 9 일이고, 탄핵을 선고받은 것이 다음해 3 월 10 일이었으니……. 연상호 감독의 신끼가 신통방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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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2 광화문에서

그래서….. 나는 5 점 만점에 4.3 점을 주겠다.

★★★★☆

ps. 영화 전체 줄거리와는 관련이 없는 몇 가지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글에서 따로 살펴보고자 한다.


연상호 감독의 새 작품 <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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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연상호 감독이 후속작 <반도>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서울역>과 <부산행>의 경우처럼 세계관을 약하게 공유한 수준의 후속작이며, 배경은 서울이라고 한다. 어떤 작품을 우리에게 보여줄까?

기대만 되는 건 아니다. <부산행>이 헐리웃의 좀비영화와 다른 재미있는 액션 같은 것을 보여준 것은 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개된 포스터나 스크린샷을 보면 총이 나오기 때문에 그런 재미는 일단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다른 부분에서 어떻게 충분히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인지 염려가 안 된다면 거짓말이다. 그렇다고 좀비로 초토화된 서울로 들어가는데 총을 안 갖고 들어간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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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이 재미를 줄 것이냐, 흥미 반감 요소가 될 것이냐?

또 철학적으로 충분한 가치를 만들 수 있느냐도 그렇다. 이전 작품의 철학의 방향과 수준을 유지하고, 더 나아질 수 있느냐는 재미를 주느냐 하는 문제보다 훨씬 더 어려운 문제다.

아무튼 좋은 작품을 만들어오던 연상호 감독이니까 기대해보자.

6 comments on “[부산행] :: 영화를 이미 본 사람을 위한 감상평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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