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게임’의 한국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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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년에 영화사에서 <어벤져스 : 엔드게임>의 ‘엔드게임’을 마지막 게임처럼 번역해서 욕을 바가지로 먹은 일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endgame’의 한 단어를 잘못하여 ‘end game’이라는 두 단어로 인식하여 생긴 실수였습니다. (구글번역기도 ‘엔드게임’이라고 한글로 넣으면 ‘end game’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검색했더니 나무위키에서는 ‘최종장’ 같은 요상한 단어로 번역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몇 초 생각해 보았습니다.

엔드게임은 체스(chess)라는 보드게임에서 경기가 끝나기 직전에 몇 개의 기물이 남았을 때 하는, 상대를 이기기 위한 수싸움을 말한다고 합니다. 체스에서는 폰(pawn, 장기의 졸병 같은 기물)이 상대쪽 끝 칸까지 갔을 때 원하는 강력한 다른 기물로 바꿀 수 있는 특이한 규칙이 있기 때문에 엔드게임이 특히 더 어려워지는 편입니다. (저는 체스를 못해서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말에서는… 바둑에서의 ‘끝내기’, 장기에서의 ‘끝내기’나 ‘삼릉’이라는 말과 일치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바둑의 끝내기는 마지막 장면에서 나와 상대의 ‘영역’을 확정짓는 것을 말합니다. (영역을 집이라고 하면 중국, 우리나라, 일본의 경기 규칙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저 문장의 뜻이 부정확해집니다.) 내 영역을 한 칸이라도 더 넓히고, 상대 영역을 한 칸이라도 좁히는 것이 끝내기의 주요 목적입니다.

장기의 ‘끝내기’는 체스의 엔드게임처럼 기물이 몇 개 안 남았을 때 이기기 위한 수싸움을 말합니다. 장기의 끝내기에서는 체스의 엔드게임에서 폰이 강력한 다른 기물로 바뀌는 등의 특별함은 일어나지 않지만, 대신 왕과 사가 궁 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졸병卒兵이 궁을 압박할 수 있는 3~4 선에 있을 때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됩니다. (보통 3~4 선에 있는 졸병은 차와 같은 힘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체스처럼 끝선까지 갔을 땐 폐물 취급을 받는다는 게 함정!) 끝내기가 진행되어 기물이 매우 적은 수가 남게 되면 흔히 삼릉이라고 부르는 상태가 됩니다. 삼릉은 전투에 임할 수 있는 기물이 한 쪽에는 남아있지 않고, 상대편은 대략 세 개 남았을 때를 일컷습니다. 물론 수비용 기물인 사가 몇 개 남았는지, 또는 어떤 기능의 기물이 남았는지에 따라 조건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삼릉은 다시 대삼릉과 소삼릉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대삼릉은 큰 기물(차車, 포包, 마馬, 상象) 8 조각 중에 3 조각이 남은 경우를 말합니다. 소삼릉은 대삼릉의 기물 중 하나가 졸병일 경우를 말합니다. 대삼릉은 대부분 승부가 나며, 소삼릉은 무승부가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체스는 바둑보다는 장기와 더 가깝습니다. 체스와 장기는 기원도 같을 뿐만 아니라, 경기를 진행할수록 기물이 많아지는 바둑에 비해서 기물이 점점 줄어든다는 점도 같습니다. 따라서 번역할 용어는 바둑보다는 장기의 용어에서 찾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장기에서의 ‘끝내기’로 번역하면 될까요?

엔드게임이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며, <어벤져스 : 엔드게임>에서는 이 뜻으로 쓰인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런 뜻으로 쓰인 것이라면 장기에서는 더 나은 게 하나 있습니다. ‘박보장기’는 묘수풀이용 장기를 말합니다. 특정 국면에서 이기기 위해서 어떻게 둬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며, 풀이 과정에서 많은 기물을 가차 없이 죽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어쩌면 박보장기를 번역에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벤져스 : 박보장기>

하지만…
영화 제목에 쓰인 엔드게임이 꼭 그런 뜻으로만 쓴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게임을 끝낸다는 의미로도 쓰인 것이겠죠. 따라서…

<어벤져스 : 끝내기>

로 번역하는 게 가장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저게 한국영화 제목이었다면 외국인들이 어떻게 번역할까 생각하게 됩니다. 아마도 그냥 <Avengers : ending>이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어느 방향으로 번역하던지간에 유달리 번역하기 어려운 경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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