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선명도와 회절과 수차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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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떤 사진작가와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렌즈와 사진 선명도의 관계에까지 전개됐다. 그 사진작가는 이전에 알려졌던 잘못된 조리개 지식을 갖고 계셨다. 예를 들어 회절은 조리개를 심하게 조여야만 나타난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이에 대해 설명해 드렸는데,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셨다. 물리학을 모르기 때문에 수차와 회절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 글은 그에 대한 것이다.

이 글은 읽는 분들이 기본촬영장비인 카메라 바디, 렌즈, 외장플래시와 사진에 대한 기본지식을 어느 정도 안다고 가정하고 설명하겠다. 여러분이 알고 있던 상식과 이 글이 몇 가지나 다른지 찾아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참, 미러리스 카메라는 일부 내용이 다를 수 있다. 내가 미러리스를 써보질 않아서…


렌즈는 이론적으로 조리개값이 작을 때와 클 때 뿌옇고, 중간값인 f/5.6 정도일 때 가장 선명하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진을 뿌옇게 찍히도록 빛을 분산시키는 요인인 회절과 수차를 우선 이해해야 한다.

0. 렌즈의 구성요소

렌즈는 렌즈알과 조리개로 만들어진다.

캐논 EF 40mm f/2.8 STM 렌즈 단면도 (출처 : 캐논 코리아)

렌즈알은 크게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로 나눌 수 있는데, 모두 투명한 물체의 표면을 구형으로 깎아 만든 것이다. 구형으로 깎는 이유는 고등학교 물리교과서에 나오므로, 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설명이 쉽지 않기도 하다.) 이런 렌즈알을 구면렌즈라고 부른다.

렌즈알을 레이저로 가공하는 방법이 개발된 뒤에 렌즈알 모양을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게 됐다. 그래서 필요에 따라 복잡한 모양의 렌즈알을 만들어 쓰는데, 이런 렌즈알을 비구면렌즈라고 부른다.

반사렌즈 단면도 (출처 )

거울만으로 만드는 특별한 렌즈가 있다. 뉴턴이 만든 반사렌즈이다. 반사렌즈는 굴절렌즈보다 일정정도의 성능까지는 만들기 더 쉽다. 그러나 성능을 극대로 끌어올리는 건 훨씬 어렵다. 그래서 이제는 크기가 커야 하는 천체망원경이나 반사망원경 정도에만 쓰이고, 사진용 렌즈에는 거의 쓰지 않는다. 그냥 이런 것도 있구나 알아두자.

조리개는 여러 개의 금속이나 플라스틱 조각을 원형으로 배열하여 동시에 움직이도록 만든다. 조리개 날의 개수에 따라 제작기술 난이도가 달라지기도 하고, 사진에 나오는 빛망울의 모양도 바뀌기 때문에 다양한 장치가 개발돼 있다. 몇십 년 전에 구소련에서 다양한 조리개가 연구되었고, 그래서 구소련에서 만들어진 렌즈를 선호하는 분도 많다. 그러나 현대에 팔리는 렌즈는 대부분 특정한 모양의 조리개만 쓰이는 편이다.

참고로, 조리개가 아예 없는 렌즈도 있다. ‘곤충의 눈’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렌즈도 그중 하나이다. 이런 렌즈는 빛이 워낙 적게 통과하기 때문에(조리개값이 매우 작다고 생각해도 된다.) 늘 빛이 부족하다. 그래서 빛의 양을 조절할 필요가 없다.

렌즈알과 조리개는 각각 다른 이유로 렌즈의 성능을 저하시킨다. 이들 각각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아래에서 설명할 것이다. 그러면 이런 요소에 의해 성능이 저하하지 않는 카메라를 만들 수 있지는 않을까? 예전 필름카메라는 불가능했지만, 디지털카메라로 발전하면서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성능 저하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성능 저하가 없는 카메라가 개발된다고 해도 대중적으로 쓰일지는 알 수 없다.

1. 수차에 따른 빛의 퍼짐

몇 가지 이유로 렌즈를 통과한 빛은 한 곳으로 모이지 않는다.

첫 번째, 빛의 진행방향을 바꾸는 굴절율은 빛의 파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빛이 한 점에 모아지지 않는다. 대체로 푸른 빛은 붉은 빛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모여서 색깔이 분리돼 보인다. 이를 색수차라고 부른다.

두 번째, 렌즈를 구면으로 만들면, 빛이 구면의 어느 부위로 들어오느냐에 따라 모이는 초점이 달라진다. 렌즈 중심에 가깝게 통과한 빛보다 멀게 통과한 빛이 초점거리가 더 짧아서 뿌연 상이 맺힌다. 이것을 구면수차라고 부른다.

이상적인 초점 형성(위)과 일반적인 렌즈가 갖는 구면수차(아래) (이미지 출처)

이 두 가지 수차는 꼭 알아두자.

이외에도 다양한 수차가 있지만, 찍새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런 수차를 줄이기 위해 많은 연구가 있어왔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여러 렌즈를 조합해 쓰는 방법과 앞에서 말한 비구면렌즈이다. 비구면렌즈는 가격이 몇백만 원 이상으로 매우 비쌌기 때문에 위성영상장비에나 쓰였다. 그러다가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한 때쯤에 렌즈를 레이저로 가공하는 기술이 개발되었고, 그뒤부터 가격이 저렴해져서 일반적인 촬영장비에 쓰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디지털카메라용 렌즈는 필름카메라 시절에 만들어진 렌즈보다 수차가 매우 적다. (물론 아직 수차를 완벽하게 없애는 방법은 없다.)

2. 조리개값에 따른 빛의 퍼짐

렌즈 안으로 들어온 빛은 사람의 눈이나 필름이나 센서에 도착하는 동안 여러 투명한 물질을 통과한다. 그동안 불투명한 물질을 딱 한 번 만나는데, 그것이 바로 조리개다.

렌즈로 들어온 빛은 조리개를 지날 때 회절이 일어난다. 회절은 빛이 장애물의 영향으로 흩어지는 현상이다. 빛이 조리개날에 가깝게 지나갈수록 더 심하게 흩어진다.

옆 그림에서 붉은 부분으로 들어온 빛은 조리개의 영향으로 사방으로 흩어진다. (이에 대한 광학적 설명은 생략하자.)[덜 붉은] 부분으로 들어온 빛도 회절을 일으키지만, 조리개와 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흩어진다. 따라서 조리개에서 회절을 일으키는 빛과 그렇지 않는 빛의 비율은 간략하게 구멍의 흰 부분과 붉은 부분의 넓이의 비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비율이 상[사진]의 선명함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림의 오른쪽과 비교해서 왼쪽이 붉은 영역에 비해서 흰 영역이 (구멍의 반지름에 비례해서….) 더 크므로 회절이 일어나는 빛의 비율이 더 적다. 따라서 찍은 사진이 덜 뿌예진다. 구멍의 크기는 조리개를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므로, 조리개값과 회절이 일어나는 양은 비례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3. 조리개 회절과 렌즈 수차의 앙상블

아래 그래프에는 세 곡선이 그려져 있다.

녹색 그래프는 렌즈 수차에 의해 상이 흩어지는 정도를 나타낸다. 조리개를 조여 렌즈 중심 부위를 지나는 빛만 쓸수록 상이 선명해진다. 주황색 그래프는 빛이 조리개날에서 회절하면서 흩어지는 정도를 나타낸다. 조리개를 조일수록 직진하는 빛에 비해 회절하는 빛이 많아지므로 상은 점점 흩어진다.

이렇게 상을 흐릿하게 만드는 두 가지 원인은 조리개값에 따라 반대로 나타난다. 사진의 선명도는 이 두 원인의 조합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다면 선명한 사진은 어떤 조건일 때 찍힐까? 조리개값 f/5.0일 때 가장 선명하다. 이 값은 사진을 찍을 때 매우 중요하다. 카메라와 렌즈 제조회사도 이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카메라는 모든 기능을 조리개값 f/5.0에 맞춰서 만든다. 저가형 렌즈도 어지간하면 조리개값 f/5.0을 포함하도록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혹 가장 선명한 조리개값이 f/5.0이 아닌 렌즈가 있다. 초접사렌즈인 캐논 MP-e 65mm가 그 예이다. 이렇게 렌즈 특성이 이론과 다른 것은 렌즈의 기계적 특성 때문이다. 따라서 사용자로서는 규칙성을 따질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조리개값에서 가장 선명한 사진이 찍히는지 종잡기 힘들다. 그래서 새로 산 렌즈는 한번씩 실험해서 가장 선명한 조리개값을 알아내야 한다.

4. 심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심도는 명료하게 딱 떨어지는 값이 아니어서 찍새 입장에서 상당히 미묘하다.

예를 들어, 접사를 촬영할 때 어떤 중요한 면에 초점이 맞았다고 해보자. 유효한 초점영역 안에서 카메라의 위치를 살짝 바꾸면 어떨까? 사진에 찍힌 면은 분명히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뇌는 그 면을 선명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러면 반대로, 중요한 면에 초점을 맞춘 상태 그대로 사진을 찍었다면, 앞의 촬영에서 초점이 옮겨졌던 곳은 선명하지 않게 보일까? 거의 대부분 선명하게 보인다. 중요도에 따라 우리 뇌가 가중치를 두기 때문에 평가가 이렇게 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측정기기로 심도를 결정하는 경우와는 다르게, 우리가 인지하는 심도는 객관적인 기준을 세울 수 없다.

심도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생각해보자. 이 꼭지에서 나오는 내용은 수차와 관련되는데, 정확히 설명하자면 기하광학을 사용해야 하므로 이 글의 목적에서 벗어난다. (필요한 분은 따로 찾아보시기 바란다.)

4.1 조리개와 심도

조리개는 보통 가장 흔히 심도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이다. 조리개를 개방하면 심도가 얇아지고, 조이면 두꺼워진다.

ps. 조리개값에 대해 주의해야 할 점

조리개값은 fx.x 형태로 많이 쓴다. 예를 들어 f2.8처럼 쓴다. 보통 f2.8보다 f5.6이 조리개값이 크다고 한다. 근데 원래 조리개값은 조리개의 개념에 따라 f/x.x 형태로 역수로 표기해야 하는데, 귀차니즘으로 인해서 역수 기호가 흔히 빠지는 것이다. 따라서 숫자가 커지면 조리개값이 작아지는 것이다. 흔히 잘못 쓰이는 말 중에 하나다. 그래서 조리개값에 대해 대화할 때 상대가 어떤 의미로 말하는 건지 늘 주의해야 한다.

4.2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의 거리

피사체가 카메라에서 멀어지면 심도가 두꺼워진다. 그래서 먼 곳에 있는 피사체를 사진에 담으면 자연스럽게 배경까지 선명하게 찍힌다.

이 말은 반대로, 카메라와 피사체의 거리가 가까운 접사를 찍을 때 심도 확보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MP-e 65mm는 5× 배율로 f/7 정도의 조리개값으로 촬영할 때 초점영역은 0.02~0.03 mm(=20~30 μm) 정도…. 그래서 심장 박동만으로도 피사체가 초점영역에 들었다가 나갔다가 한다. 그래서 초접사 촬영은 자기 심장 박동에 맞춰 단추를 누르는 리듬게임과 비슷하다. (이게 focus stack으로 찍은 초접사 사진이 자꾸 얻어지는 원인이다.)

4.3 렌즈의 초점거리

초점거리란 렌즈의 대물렌즈와 초점(보통 필름이나 센서) 사이의 거리이다. 이것은 렌즈의 특성에 해당한다. 바디가 같을 경우, 렌즈의 초점거리에 따라 사진에 담기는 장면의 넓이가 결정된다. 흔히 초점거리가 40~50 mm일 경우 표준화각렌즈라고 부르며, 이보다 작을 경우 광각렌즈, 더 클 경우에 100 mm 정도까지를 준망원렌즈, 그 이상은 망원렌즈라고 부른다. 이게 모두 사진에 담기는 장면의 넓이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다.

그런데 초점거리가 심도에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인 조리개 설정에서 생각해보자. 광각렌즈는 조리개를 그리 조이지 않아도 심도가 두꺼워서 보통 풍경촬영에 쓰인다. 표준화각 렌즈는 일상생활에서 인물을 찍었을 때 얼굴이 전부 선명하게 나올 정도이다. 물론 오이만두(canon EF 50 mm f/1.2L USM) 같은 조리개를 매우 넓게 개방할 수 있는 렌즈는 심도가 매우 얇아서 코 끝에 상이 맺힐 때 눈은 뿌옇게 흐려질 수 있다. 망원렌즈는 심도가 더 얇다. 그러나 최소초점거리가 꽤 먼 편이기 때문에, 인물을 찍었을 때 몸 전체가 선명하게 나올 정도의 심도는 된다. 그러나 피사체와 멀리 떨어진 배경은 거의 모조리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뿌옇게 찍힌다.

4.4 카메라 센서의 크기

센서나 필름의 크기도 심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큰 센서의 사진을 작게 자르면 작은 센서의 사진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화소밀도가 같다면 말이다. (실제로 완전히 동일한 특성의 센서를 쓰는 카메라들이 있다. 내가 쓰고 있는 5DsR과 7Dm2의 경우 센서의 로우패스필터만 약간 차이가 날 뿐, 거의 모든 장치가 같아서 잘라내면 사진이 호환될 수 있는 수준이다.)

방송용 카메라와 스마트폰 카메라(폰카)는 보통 f/20~f/30 정도이므로 심도가 많이 두껍다. (사실은 센서가 작아서 조리개값이 큰 것처럼 찍히는 것!) 방송에 출연한 사람이 어지간히 움직여도 항상 선명하게 잡히는 게 이 때문이다. 흔히 똑딱이라 부르는 작은 카메라는 심도가 방송용 카메라와 dslr의 중간쯤 된다. 반대로 dslr은 조리개값이 작아 아웃포커싱(모든 배경을 선명하지 않게 찍어 주피사체를 부각시키는 촬영방법)하기 쉬운 게 특징이다. 원한다면 조리개를 f/1.0보다 작게 만들 수도 있다.

베이비렌즈처럼 선명도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 심도를 극단적으로 얇게 만든 렌즈도 있다.

4.5 사진의 크기

같은 사진이더라도 크기를 바꾸면 심도가 변한다. 사진을 작게 만들수록 심도가 두꺼워진다. 사진 크기를 바꾸면 한 개의 화소가 차지하는 영역의 넓이가 바뀌는 셈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다. 보통 찍새들이 사진을 찍은 뒤에 크기를 줄여서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5. 각 상황에 유용한 조리개값

사진을 찍을 때는 선명도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작가가 원하는대로 원하는 피사체가 모두 선명하게 나오거나, 원하는 특정부위만 선명하게 나와야 좋다. 물론 어떤 조건으로 사진을 찍을 것이냐는 당연히 작가가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조리개값은 작가가 원하는 만큼 조이는 게 답이다. 각 상황에 따라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조리개값을 살펴보자. 하지만 이걸 알아가기 전에, 이게 정답은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각자가 원하는 사진이 다르므로, 여러 가지 조건으로 시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5.1 접사

앞에서 말했듯이, 초점거리가 짧아지면 심도가 얇아진다. 심도가 얇으면 전체적인 모양을 파악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접사를 찍을 때는 항상 심도 확보가 중요하다. 아래 그래프의 하늘색 곡선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심도는 조리개를 조일수록 두꺼워진다. 즉 초점 맞는 부분이 더 많아진다. 그러나 조리개를 조일수록 조리개를 통과하는 빛의 양이 줄어들어서 더 오래 노출해야 한다. 그러면 촬영이 힘들다. 이게 접사를 할 때는 늘 심도를 어떻게 하면 더 넓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 되는 이유이다.

접사에 대해 다루는 책이나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자료를 보면 조리개값을 보통 f/9~f/11 정도로 찍으라고 추천하고 있다. 나는 처음에 누구에게 배우지도, 자료를 찾아보지도 않고 혼자서 접사촬영을 익혔는데, 몇 달 찍다보니 조리개를 f/9~f/11 정도로 조이며 찍고 있었다. 이게 답이긴 답인가보다.

심도라는 요소를 제외하고 생각한다면, 괜찮은 사진을 담기에 적당한 가장 작은 조리개값은 f/11 정도다. f/11보다 더 작은 값으로 찍으면 뿌연 정도가 심하고, f/15 정도가 되면 전시사진으로 쓰기는 힘들어진다.

‘곤충의 눈’ 같은 특수렌즈는 조리개가 f/60~f/90 정도여서 몇 cm 떨어져 있는 피사체부터 무한대의 거리에 있는 별이나 구름까지 선명하게 찍힌다. 대신 늘 빛이 부족하기 때문에 조리개가 없고, 더군다나 보조광을 필요로 한다.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렌즈다.

5.2 얇은 피사체 접사

반대로 괜찮은 사진을 담기에 가장 큰 조리개값은 얼마나 될까?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조리개값은 심도까지 고려하면 보통 f/5이고, 심도를 빼면 f/4 정도이다. 물론 심도가 얇아지면서 초점면을 피사체에 정밀하게 위치시키는데 어려움이 생긴다. 그건 촬영기술로 극복하면 되니까 이 값을 최대값으로 인정하도록 하자.

우리가 여기에서 하나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거미줄이나 넓고 판판한 잎사귀 같은 걸 찍으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리개를 완전히 개방하고 멀찌기서 찍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접사지만 접사가 아닌 사진이 되는 건가? 아무튼 아주 가끔, 조리개값을 최대한 개방해 찍는 게 유용할 때도 있다.

유리에 붙어있는 게코도마뱀의 발바닥
자세히 보면 초점면을 정확히 일치시키지 못했다. 그래도 나름 만족스런 사진이다.

내가 사진을 시작한지 2 년 갓넘었을 때 f/2.8로 접사 사진을 많이 찍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대부분 피사체에 초점면을 일치시키는데 실패했다.

5.3 포커스 스택을 활용한 접사

접사에서는 보통 선명함과 심도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했듯이, 선명함과 심도가 가장 좋은 조리개값은 다르다. 그러면 이 둘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는 없을까?

“없다.”

이게 답이다.

그러나 이미지 처리 소프트웨어가 발달하다보니 포커스 스택focus stack; cofocus나 multifocusing이라고도 부른다.이라는 기술이 발전했다. 포커스 스택이란 건 여러 장의 사진을 겹쳐놓고서, 초점이 맞은 부분만 합하는 기술이다. 이런 기술을 쓰면 가장 선명한 조리개값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서 합하면 선명하면서도 심도도 충분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아래 사진은 그렇게 합성한 것이다.

알 수 없는 거미종의 애거미

이 사진은 알집에서 나온지 이틀 된 몸 길이가 0.5 mm 정도 되는 애거미이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찍은 사진은 조리개를 f/10 정도로 조여서 찍어도 심도도 얕고, 화질도 너무 뿌옇게 된다. 그래서 MP-e 65 mm 렌즈를 f/7.1로 설정해서 12 장을 찍은 뒤에 그중 8 장을 뽑아 한 장으로 합성했다. 일반적인 사진보다는 뿌옇지만, 피사체 크기를 고려하면 모든 부위가 선명한 셈이다.

포커스 스택으로 촬영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포커스 스택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 대부분 최대개방으로 찍어서 합성하라고 나온다. 그러나 포커스 스택이 가장 선명한 사진을 찍기 위한 것이다. 조리개값을 최대개방으로 찍으면 초점이 맞아 선명하게 보이는 부분도 사실은 약간 뿌연 상태다. 따라서 포커스 스택의 장점을 활용하자면 이렇게 찍으면 안 된다. 그러니까 촬영에 이용하는 렌즈의 선명도가 가장 좋은 조리개값으로 촬영하는 것이 좋다. 보통 렌즈는 f/5.6일 테고, 특별한 렌즈는 f/4.0부터 f/8.0 사이에 있을 것이다.

5.4 풍경사진에서의 조리개값

풍경사진도 접사처럼 모든 부분이 선명한 게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조리개값을 조여야 한다. 그래서 보통은 접사와 비슷하게 f/9.0~f/11.0 정도로 찍는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추천될 것이고, 이 설정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풍경사진에 쓰는 렌즈는 보통 광각렌즈이고, 광각렌즈라면 기본적으로 심도가 두껍다. 따라서 조리개를 좀 풀어도 결과는 조였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양한 조리개값으로 찍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상황에 따라서 좋은 것은 늘 바뀌게 마련이니까…. 개인적으로 나는 f/5.x 정도로 찍는 것을 선호한다.

5.5 인물사진에서의 조리개값

일반적으로 찍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자면, f/2.8로도 모자라서, 최대개방 조리개 수치가 f/1.0에 가까운 특별한 고가의 렌즈를 이용해서 촬영한다. 상대적인 선명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고품질의 인물사진을 원하는 것이라면 역시 조리개를 어느정도 조여야 좋다. 여러분이 인상깊게 봤을만한 역사적인 사진은 대부분 조여서 찍은 것이다.

다만 그냥 이쁘다, 잘 나왔다 싶은 수준의 사진을 원한다면 최대개방으로 찍어라. 왜냐하면, 조리개를 조여서 찍은 인물사진은 땀구멍 등도 하나하나 구별할 수 있어서 상당한 후보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생충] 800만 기념 무대인사에서의 봉준호 감독
(f/6.3으로 찍은 건데, 이건 이 렌즈의 최대개방 조리개값이었다.)

결국 인물사진을 주로 찍을 렌즈를 구입하려고 한다면, 최대개방 조리개값이 큰 것일수록 좋다. f/1.0인 렌즈(캐논의 경우 ‘할배만두’라고 이름붙여진 전설속의 canon EF 50 mm f/1.0)이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걸 명심해라. 가끔은 최대개방으로 찍는 것도 좋지만, 대부분의 사진은 조리개를 어느정도 조여서 찍어야 좋다는 것을…..

참고) 단체사진 촬영
단체사진을 찍는 경우 최소한 모든 얼굴이 초점영역 안에 있도록 조리개값을 맞춰줘야 한다. 옛날 사진사들의 경우엔 (2단으로 찍을 때 몇, 3단으로 찍을 때 몇 하는 식의) 조리개값 공식을 사용했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이 공식을 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공식은 필름으로 찍던 때 만들어졌다. 그때는 필름 사용에 따른 비용은 물론이고 여러 장을 찍을 기회도 없었고, 촬영한 뒤에 합성할 수도 없었다. 이런 조건에 맞춰서 공식이 만들어진 건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은 순식간에 10 장쯤 찍는 건 그리 어렵지도 않고, 또 합성하기도 쉽다. 따라서 조리개를 좀 많이 조이고 여러 장 찍어서 안 흔들리게 촬영된 것만 합해도 된다. 특히 사진을 찍을 때에 딱딱 맞춰 눈을 감는 사람이 꼭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을 처리하기 위해서라도 최소 한 장은 타이밍에서 벗어나게 찍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제는 조리개를 공식보다 더 조이고서 여러 장을 찍는 방법이 더 유용한 것 같다.

6. 선명도에 영향을 미치는 나머지 요소

6.1 노출시간에 따른 선명도 변화

노출시간에 따른 선명도에 대해 알려면 우선 카메라가 노출시간을 어떻게 조절하는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셔터가 작동하는 방법

가장 처음 만들어진 카메라는 사람이 셔터막을 직접 열었다 닫아야 했다. (그래서 배경이 옛날인 영화에서 시계를 보며 사진을 찍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다가 이게 자동화되어, 시간에 맞춰서 셔터를 자동으로 열고 닫는 비교적 간단한 장치가 추가된다. 셔터를 느리게 움직이면 노출시간이 길어지고, 셔터를 빠르게 움직이면 노출시간이 짧아졌다. 그제서야 좀 더 정확한 밝기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노출시간이라는 말 대신 셔터속도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장치를 개선해도 셔터속도는 1/250 초라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사람들은 더 짧은 노출시간을 원했다. 어떻게 이 문제를 극복했을까?

셔터를 두 개 설치하는 게 답이었다. 두 개의 셔터는 약간의 시간차이를 두고 같이 움직인다. 이때 먼저 가는 것을 선막, 뒤에 가는 것을 후막이라고 한다. 선막이 지나가면 빛이 카메라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하고, 후막이 지나가면 차단된다. 셔터가 움직이는 속도는 늘 같지만, 두 셔터의 간격이 바뀌면 노출시간을 자연스럽게 조절할 수 있다. 1/200 초는 1/100 초일 때보다 셔터 간격을 절반으로 조절하는 식이다. (이제는 셔터속도라는 말은 그만 쓰고, 다시 노출시간이라는 말을 써야 하는 게 아닐까??)

많은 사진이 1/8000 초의 노출시간으로 찍힌다. 그러나 노출시간이 짧아질수록, (조리개를 조일 때처럼) 빛이 통과하는 부분의 면적 중에 셔터에 의해 회절이 일어나는 부분의 면적 비율이 커진다. 아래 그림에서 두 연두색의 간격이 좁을수록 그 사이의 흰색 영역에 비해 연두색 영역의 비율은 커질 것이다. 그래서 노출시간이 짧을수록 셔터 때문에 일어나는 회절에 의해 빛이 더 심하게 번진다. 보통 1/8000 초로 찍을 때는 조리개도 최대개방일 테니 수차도 매우 심하게 일어나서 사진이 아주 뿌옇게 나온다. 사진을 원본 상태로 보면 왜 이렇게 뿌옇게 찍혔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다. 따라서 노출시간을 극단적으로 짧게 한다는 말은 선명하지 않은 사진을 찍겠다는 말과 같다.

다만, 셔터막에 의한 회절은 조리개에 의한 회절과 비교해서 매우 적게 일어난다. 그래서 노출시간이 1/2000 초 정도는 돼야 뿌옇다는 것이 눈에 띈다.

조리개의 구멍(분홍색 원형) 양 옆으로 셔터날(연두색 직선형)이 지나가고 있다.
노출시간은 두 셔터날의 간격을 바꿔서 조절한다.

그러나 인물사진을 이렇게 찍으면, 이미지처리 프로그램으로 뽀샤시 처리를 하지 않아도 피부가 뽀얗게 찍힌다. 뽀샤시가 보통 해상도를 줄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진을 보통 모델이 좋아한다고 한다. 오이만두(canon EF 50 mm f/1.2L USM)처럼 모델사진을 찍는데 좋다는 렌즈는 하나같이 최대개방 조리개값이 매우 큰 이유가 이 때문이다.

아무튼, 보통은 노출시간이 길수록 찍힌 사진은 더 선명하다. 노출시간을 극단적으로 짧게 찍은 사진은 열악한 촬영환경에서 찍을 수밖에 없는 사진이나 모델사진 정도가 아니라면, 보통 가치가 없다. (그리고 모델사진이라서 가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최고의 사진인 경우는 별로 없다.)

6.2 기타등등

이 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되어 빼려다가 설명 없이 추가한다.

  • 접사링(Extension tube)이나 접사필터(close-up filter)를 쓰면 화질이 나빠진다. 내부마감 수준도 영향을 준다.
  • 필터(접사필터, 편광필터, ND필터 등)는 화질을 나쁘게 만든다. 보호필터도 마찬가지다.
  • 플래시와 반사체 종류가 선명도에 영향을 미친다.
  • 조명과 관련해서 노출시간을 1/20 초 정도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정말 재미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관련글)

결국 화질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좋은 카메라와 렌즈는 기본이고, 많은 악세서리와 보조기구도 필요하다. 물론 노하우는 말할 것도 없다.

마지막 고친 날 : 2022.04.15